#애프터 치앙마이
일에 집착하면서 불안장애를 헤쳐나가던 전 직장인 현 백수 미혼 여성.
담당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나를 걱정했었다.
일을 통해서 잡생각을 잊고 오히려 상태가 좋아진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사회생활을 잘하지 못했고 회사의 퇴사 요청을 받아들였다.
처음 3주 정도는 불안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으나 이제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특히 스스로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변화는 잠에 드는 시간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9시 정도면 졸리다. 아 활동을 멈출 때가 되었군 생각한다.
신경안정제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스르르 잠이 드는 것을 느낀다.
심할 때는 아예 잠에 들지 못하던 나다.
오늘은 아침부터 사부작사부작 집을 치웠다.
어디 공유 오피스라도 나가서 글을 쓰거나 해볼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집에 있는 게 낫다고 느낀다. 집중이 안 되면 집을 치우는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만큼 정신건강에 좋은 것도 없더라.
집을 치우거나 이렇게 글을 쓰는 행위는 오로지 나를 위한 행위다. 팀장에게 나의 업무의 결과를 허락받을 필요도 없다. 까먹고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허락받지 않는 것의 안도감이 이런 느낌이었지.
왜 나는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일하지 않았는가.
못한 건가?
얼마 전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 읽었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러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하...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집을 청소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먹으며, 산책을 나가며, 글을 쓰며, 신경 안정제를 챙겨 먹으며,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며, 술 생각이 나다가도 술을 찾지 않으며 이것이 나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조금은 생각하는 중이다.
회사에서 짐을 챙겨 온 것을 오늘에야 정리했는데 버려야 할 못생긴 명함이 한가득이다. (이전 회사의 명함은 정말 못생겼다) 오늘은 회사의 이름이 적힌 것이 아닌, 내가 나를 소개하는 명함을 스스로 디자인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