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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고 닦고 쓸고 닦고

#애프터 치앙마이

by 송송당

작년 4월은 태국 치앙마이에 있었다.


최고 온도 43도까지 찍는 무더위에 비는 안 오고 미세먼지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숨이 막혔었는데... 한국의 4월은 눈이 내린다. (정확히 말하면 눈과 비가 섞인 것 같다) 지금 창 밖에서 내리는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는 중이다. 저 멀리 보이는 뒷산에도 눈이 쌓여있다.


치앙마이에 있었던 것이 어제의 일 같은데 지금은 서울에서 내리는 눈/비를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니. 모든 것은 한순간이다.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는 일요일이다.


요즘은 향후 뭘 할지 고민하면서 주로 '청소'를 한다.


쓸고 닦고 쓸고 닦고 정리하고의 반복이다.


정리를 해도 밥을 한 번 차려먹으면 다시 엉망이 되어서 매 끼니마다 청소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 집이 차분하고 깔끔하게 유지가 된다.


일을 할 때도 그랬다.


끊임없이 일을 정리했다. 어째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항상 그게 내 몫이었다.


스타트업이어서 체계가 없기는 했지만 대기업이라고 또 뭐 얼마나 체계적이겠는가.

(그렇지만 스타트업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놀라울 정도로 체계가 없다)


팀장이나 경영진도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정리하고, 마무리지었다.


정리를 해도 뭐가 빠진 게 있을까 이를 악물고 고민하고 다시 들여다봤다.


지난번 팀장은 이런 나에게 짜증을 냈다. 그럴 거면 나보고 팀장을 하라나 뭐라나.


비겁하다고 느꼈다.


본인은 진심으로 한 말이라는데, 그러면 진심으로 나에게 팀장 자리를 넘기든가.


권력욕심을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그러면 니가 팀장 하세요'라고 하는 말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신은 내가 팀장에 어울릴 것 같아서 진심으로 한 말이었을 뿐이라고 짐짓 순진한 얼굴로 나에게 답변하는 그를 보면서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회사라는 곳에서는 분명히 어질러져 있어서 정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팀장이나 경영진의 허락과 눈치가 필요했다. 내 노고를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사람들은 동료 직원들 뿐이었다. 동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정확히 필요한 일인데 아무도 안 하고 있는 걸 알아서 고마워했고 팀장은 자신의 권한이 침해당하는 느낌이라며 고까워했다.


그런 시절을 뒤로하고, 마음껏 더러운 곳을 청소할 수 있어서 좋다.


지금 하는 건 매일매일 감사 일기 같은 것을 쓰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기에 써보는 글.


오늘의 나는 미세먼지가 세계 최악인 곳에 있지도 않고 집도 마음대로 정리했으며 편안한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글도 쓰고 있다. 너무도 많은 일이 일어나는 이 현실세계에서 나의 상태는 감사해야 할 일이다.


오후 늦게쯤 되면 불안함이 조금 몰려와서 손 끝이 떨리겠지만 처방받은 약을 입에 털어넣고, 일찍 잠에 들면 그것도 또 지나간다.


결국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언젠가는 신경안정제를 끊고 싶은데, 그것도 뭐 언젠가는 다 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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