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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28. 2023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치앙마이랄까

#치앙마이 일년살기

교육비자를 받기 위해 다시 치앙마이 이민국을 찾았다.


태국의 교육비자는 한국에서 받아올 수도 있고 태국에 입국한 후에 받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받는다면 온라인으로 신청 및 발급이 가능하지만 대신 어학 프로그램 시작 전에 여유롭게 입국해서 태국 생활을 준비할 시간을 갖기는 어렵다. 나는 수업 시작 한 달 전에 입국해서 여유롭게 준비하기를 원했으므로 입국 후 비자를 교육 비자로 변경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 경우 이민국에 적어도 두 번은 방문해야 한다. 첫 번째 방문 시 어학원에서 준비해 준 서류와 비자 변경비 2천바트를 지불해야 하며 그 절차가 끝나면 한 달 후에 다시 방문해서 여권에 도장을 받는다.


이민국은 어학원 그것도 도시를 대표하는 치앙마이 대학교 부설 어학원 직원들이 모르는 사이에 비자 신청 서류를 하나 추가했고 그게 빠져서 나는 이민국에 두 번을 방문하고 나서야 겨우 교육비자 변경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방문에서도 3시간을 기다려서 서류 제출을 마무리했다.


태국에서 관공서 업무를 볼 때는 한국에서의 자아는 잠시 잊어야 한다.


예전에 친구가 유럽의 어느 나라를 방문했을 때 아무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놀랐다고 했는데 나도 지금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정신건강적인 측면에서만큼은 태국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건강하지 않을까?


다행히 기존의 방문을 통해 이민국 시스템이 어떤지 경험을 한 지라 감정의 동요 없이 조용히 기다린 후에 업무를 처리했다.


저번에 갔을 때는 번호를 방송으로 불러주던데, 일주일 만에 다시 방문하니 이번에는 전광판에서 번호가 자동으로 뜬다


이민국을 방문할 때면 다양한 국적과 인종, 나이의 사람들을 보게 되어서 새삼 놀란다. 서울에서도 많은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치앙마이만큼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내 앞 번호에서 한 영국인 노인과 태국인 여성 커플이 20분쯤을 잡아먹어서 이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머리가 많이 빠진 남성은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를 곱게 머리 뒤로 넘긴 흡사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같이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무척 꼬장꼬장해 보였다. 태국인 여성이 그냥 되었다며 가려고 해도 아니라고, 더 확인해야 한다고 여성을 통해 이민국 직원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다. 늘 갑의 위치에서 여행자들을 대했을 이민국 직원도 이번만큼은 남성을 대하며 힘들어 보였다.


신기한 헤어스타일의 할아버지 말고도 외국인인데 승복을 입은 분도 두 명이나 보았다. 이들도 외국인인지라 비자 관련 업무가 필요한 것 같은데, 이들을 대할 때는 사무실에서 높은 직급으로 보이는 직원이 직접 나와서 합장을 하고 업무를 안내했다. 태국은 승려를 매우 존경하는 나라니까 말이다.


치앙마이는 서구권 국가에 비해서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무척 적게 들어가고, 이를 활용하여 장기로 거주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이들이 모여서 치앙마이의 경제를 뒷받침하고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여 함께 살아간다.


돈만 지불하면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서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돈으로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구매한다. 그것이 외로운 삶을 이겨내게 해 줄 연인이 되었건, 술이 되었건, 마사지가 되었건, 쇼핑이 되었건 간에 말이다. 자국에서는 혼자 단칸방에서 독거 생활을 해야 할 돈이면 이곳에서는 가정을 꾸려 평생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수도 있다. 나는 태국만큼 외국인 남성들이 와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나라를 본 일이 없다. 어린아이를 안고 걸어가는 남성들의 얼굴은 함께 걸어가는 부인들의 얼굴보다 더 행복해 보일 때가 많다.


이렇게 작고 아름답고 종교적인 도시가 세속적인 사람들의 욕망을 받아주는 역할을 하면서 먹고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 이것이 정말 자본주의의 정수로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태국의 비자 관련 절차는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민국 주변에는 비자 관련 업무 대행사들이 몰려있다. 어떨 때 보면 이래서 태국의 관공서 업무 절차는 전혀 개선되지 않겠구나 생각하기도 한다. 절차가 복잡해야 관련 업무를 하는 업체들도 돈을 벌 것이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이런 업체 사람들이 공무원들에게 뒷돈을 찔러주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날 것이다. (이민국 업무는 경찰 소관이고 태국 경찰의 비리 행각은 꽤나 외부에 많이 알려져 있다)


인간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는데, 반대로 태국은 속이 훤히 보여서 오히려 익숙하고 마음이 편하다.


한국의 폐쇄적인 사회와 문화에 너무 절여져 있다가 이런 곳에 나오면 재미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경험을 통해 한층 성장하는 기분이다. 나의 노후는 한국에서 같은 국적의 사람들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다국적의 사람들 틈에서 보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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