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당 Sep 26. 2023

행복의 유예

#치앙마이 일년살기

숙소에 머물며 집안일을 할 때는 종종 유튜브로 강의 같은 걸 틀어놓는데 이번에는 어떤 의학박사님의 강의였다. 내용은 잘 살기 위해서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운동하면 된다는 것. 나 역시도 이 세 가지가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나름 집중하며 듣고 있었는데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박사님이 한 마디를 하셨다.


무인도에 혼자 살면 바디 프로필 찍을까요?


몸매를 가꾼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 전제된 것이고 타인의 시선이 없는 곳이라면 조각 같은 몸을 추구하겠는가 이 말이었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것보다 진짜로 건강한 음식을 먹으라는 내용이었는데 이 말이 마음에 크게 파장을 일으켰다. 평생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런가 하면 나는 거울 속 내 몸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사춘기를 넘어서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는데 부모님은 이런 나를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살을 뺀 나의 몸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지금도 그렇다. '일단 살부터 빼고 무엇을 하겠다'라고 생각해서 지금의 나 자신을 위한 일은 별로 하지 않는다. 좋은 옷을 사는 것도, 좋은 숙소에 가는 것도 살을 뺀 이후여야 한다. 지금의 나에게 돈을 쓰는 것은 아깝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벌써 수 십 년이 흘렀고 나는 30대 후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언제쯤 나는 행복하게 살 자격이 생기는 걸까?


이런 면에서는 태국인들은 나보다 한참을 앞서있다. 타인의 시선을 극단적으로 신경 쓰지만 자신의 행복도 극단적으로 추구한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뭐가 즐거운지 항상 삼삼오오 모여서 웃고 떠든다. 외모를 살펴보면 뚱뚱한 사람도 많고 게이, 톰보이(여성이 남성처럼 꾸밈), 레이디보이(남성이 여성처럼 꾸미거나 성전환) 등 다양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사회적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자신의 욕구에 더 충실한다. 적어도 나처럼 계속해서 행복을 유예하지는 않아 보인다.


요즘은 계속 잠을 잘 못 자서 새벽 4시에 잠들었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오후에는 도서관에 가서 내일 있을 태국어 수업을 위해 예습을 했다. 이곳에서는 너무 빡세게 성과추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예 놀기에는 마음이 불편하다. 태국에서 1년을 살고도 태국어를 제대로 못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치앙마이 대학교 도서관
치앙마이 대학교 안의 어느 공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원반던지기도 하고 있던데 나는 대학시절에 그런 여유를 가져본적이 없다. 늘 쫓기며 공부만 했었다.   


치앙마이 생활은 1년이나 남았지만 1년밖에 남지 않기도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치앙마이 생활을 끝낼 날이 올 것이다.


1년 후 나는 여전히 행복을 유예하고 있을까?


무엇이 지금의 내가 행복한 길일까?


아마도 인생의 1/3 정도는 살았을 지점, 남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이제야 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바이 사바이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