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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29. 2023

명절을 혼자 보내는 건 생각보다 괜찮다

#치앙마이 일년살기

한국은 추석 명절을 맞이하였고 나는 홀로 태국 치앙마이에서 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명절, 어떤 이들에게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행복한 시간이겠고 어떤 이에게는 가족으로 인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겠고 어떤 이들에게는 함께할 가족이 없어 외로운 시간일 수도 있겠다. 


나에게 명절은 언젠가부터인가 심장을 조여 오는 힘든 시간이었다. 


명절 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낸 것은 조부모님들이 살아계실 때의 일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사이가 나빠진 후부터 명절에 큰집을 찾지 않았다. 기분을 낸다며 엄마는 종종 명절 음식을 하긴 했지만 명절 대부분은 TV에서 하는 특선 영화나 보며 보냈다. 


남동생이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은 후 몇 년 간은 남들 하는 것처럼 명절을 보내보기도 했지만 동생의 이혼 이후 다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내가 독립을 하고 집을 나가자 정확히 그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시어머니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언제 오니, 언제 오니, 언제 오니...


함께 살 때는 전혀 그런 적이 없던 엄마는 나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고 갑자기 나와 애틋한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다. 나에게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저질렀던 아빠까지 함께 단란한 가족이 하는 행동들을 하자고 했다. 독립을 했어도 주말마다 집을 찾고, 엄마가 부르면 가고, 명절에는 함께 국내 어딘가로 여행을 갔다. 엄마는 남동생은 일 때문에 바쁘다며 부르지 못했고, 혹은 나에게 남동생에게 집에 오는지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내가 동생보다 더 바쁘게 일하는데 엄마는 나에게 연락할 때는 시간과 이유에 구애받지 않았다.


시간을 함께 보내기만 하는 거라면 참고 견딜 수 있었겠지만 이 과정에서 나의 선택권은 절대적으로 결여되었고 만날 때마다 엄마와 아빠가 나에게 자신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투척하게 되면서 집에 가는 행위는 마라톤을 뛰는 것처럼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어느샌가 부모님의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20대 중반까지는 아빠의 물리적, 언어적 폭력에 시달렸는데 그 이후부터는 엄마가 나를 감정적으로 놓아주지 않는 것이 표면화되기 시작하더니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엄마가 아빠보다도 더 힘들어졌다. 


작년 생일을 기점으로 엄마의 연락을 모두 끊어냈고 집에도 가지 않기 시작해서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일단은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땠냐고?? 죽는 줄 알았다. 


엄마와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 박우란 심리 상담사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유튜브에도 출연하시길래 얼마 전에 어떤 영상을 하나 봤다. 영상에서 상담사님은 여성의 구조적인 특징에 대해 언급하셨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관계 중심적이고 에너지나 관심이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향해 있다. 그래서 나 자신보다는 타인의 결여를 채워주는 것에 집중하며 엄마들의 경우 그 대상이 주로 남편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헌데 딸은 결여를 채워줄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과 동일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딸에게는 상처를 주고 그것이 상처를 준 것임도 인식하지 못한다. (남성의 경우 에너지가 나 자신을 향해 있으며 관계 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에 더 집중하고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잃게 되는 경우를 두려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엄마가 변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먼저 돌보는 것이 필요한데, 딸들의 경우도 여성인지라 이 과정에서 관계가 틀어지고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껴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호소한다고도 덧붙이셨는데 내가 정확히 그랬다. 


분명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서 부모님과 거리를 두었는데, 엄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끊임없이 연락을 했고 이 연락을 끊어내면서 나는 속으로는 계속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고통스러워하고, 술로 그 고통을 잊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지속했다. 


그런 시간을 견디고 견디고 치앙마이에도 오고 공황발작도 겪고 나서 이렇게 태국에서 홀로 추석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서 거리를 두면서도 그 사실 때문에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했는데, 사실 그건 다 내 마음속에서만 일어난 고통이고 실상은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에 핵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어디 몸이 불편해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인 일이 더 많았다.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남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해서 연구한 시간도 없었고 부모님에게서 떨어져 있기에 부모님의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엄마도 내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이 행동했지만 지금 멀쩡히 잘 살아 계신다. 


결국 두려움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던 것이다.


명절을 혼자 보내는 것은 전혀 외롭지 않고 생각보다 괜찮다. 


치앙마이는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다들 추워하는데 태국어 수업을 듣는 한국인들만 다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아아는 한국인의 문화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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