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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30. 2023

아이고 사장님

#치앙마이 일년살기

오늘은 올드타운을 돌아다녔다. 


치앙마이 시내에서 관광객이 주로 가는 지역은 올드타운, 님만해민, 싼티탐, 치앙마이 대학교 정문/후문, 센트럴페스티벌 부근 이 정도로 나뉘는데 이 중 올드타운은 옛 성곽 안쪽의 지역을 일컫는 단어로 유서 깊은 사원 등이 모여 있는 관광 지역이다. 이쪽은 높은 건물을 올리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꽤나 조용하게 동네를 돌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같은 포지션이라고 해야 할까. 퇴사 전 국내 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왔었는데 치앙마이 올드타운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기는 했다. 유적지 덕분에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동네의 모든 산업이 관광객에 맞춰져 있다. 물론 경주는 좀 심하다 싶기는 했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에서는 다양한 메뉴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경주 시내에서는 십원빵, 경주빵 등등 죄다 다 빵이었다. 빵으로 협박당하는 느낌이었달까? 


빨간 박스 안 쪽이 올드타운


올드타운 쪽은 관광지가 맞기는 하지만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하고 학교도 몇 개 있어서 조금은 차분한 느낌의 관광지다. 유명한 사원이 몰려있는 길은 번잡하지만 그 주위 아무 골목이나 잡아서 들어가 보면 곧장 조용해지고 평화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골목 탐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올드타운이 말 그대로 노다지다. 


올드타운 골목 골목은 돌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용한 골목을 돌아다니며 힐링을 하다가 원두를 사기 위해서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한 카페를 방문했다. 숙박 시설 마당 한쪽에 아주 작게 가건물을 만들어 장사를 하는데 남자 사장님의 커피에 대한 열정이 굉장하셔서 고급 카페에 견줄만한 훌륭한 맛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시는데 여자 사장님은 숙박업소를 관리하면서 마당에 카페 손님이 들어서면 메뉴판을 건네고 계산을 하는 역할을 하시는 것 같았다. 첫 방문에서 고작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뿐인데 맛이 상당해서 굉장히 놀랐었다. 


카페 입구에서 나를 보고 환하게 웃던 여자 사장님이 내가 커피 주문은 안 하고 원두 구매를 물어보자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온니 커피빈?" 커피는 안 마시고 커피 원두만 사냐는 것이었다. 여자 사장님 표정을 보고 원두만 사면 안 되는 건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남자 사장님이 나타나 원두를 준비해 주셨다. 남자 사장님은 누가 봐도 커피 덕후의 면모를 보이는 분으로 사장님께 원두에 대해 물으니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원두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원두는 치앙마이에서 재배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10년 전 즈음에 도이창이라는 커피 농장에 가봤다고 화답했다. 병에 보관된 원두를 꺼내는 과정에서 남은 원두의 신선도를 위해 병에서 공기를 빼내고 있는 사장님을 보면서 저 사람은 정말 커피 전문가구나 하고 감탄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저렇게까지 하는 카페 사장님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대화를 마치고 QR 결제로 원두 가격을 지불하고 뒤따라 들어온 여자 사장님께 결제 내역을 보여 드렸는데 여자 사장님 표정은 여전히 뚱해 보였고 내가 나가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가는 순간까지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뒤에서 남자 사장님은 다시 한번 더 나에게 "컵-쿤 캅(고마워요)"이라고 인사를 해주고 계시는데 말이다.


커피를 주문하지 않고 원두만 사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카페는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파는 것이 맞고 나도 그걸 알고 간 것인데 다른 손님들은 원두를 살 때 커피도 함께 주문해서 마시고 가는 게 일반적인가 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싶을 정도로 여자 사장님 표정이 안 좋았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비단 태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다른 손님 대비 돈이 안 된다 싶을 때 무례해지는 사장님들을 보는 것이 흔하기 때문이다. 경주에서도 그랬다. 혼밥을 하려다가 할머니 사장님의 따가운 눈치를 얼마나 받았는지 모른다. 밥을 팔기는 하셨지만 할머니 사장님의 표정에 온갖 짜증이 묻어났고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밥을 빠르게 해치우고는 현금으로 계산을 해드렸다. 그제야 사장님 표정이 누그러졌었다. 


이런 경우 나는 다시는 그 가게에 가지 않기 때문에 아쉬울 것은 없다. 그냥 이런 생각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태국은 모계사회라고 했고 여자 사장님의 계산적인 면모 덕분에 저 집이 저렇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작년 이전에는 2년여간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장사도 못 했을 테니 이제야 손해 본 것을 채워 나가는 시기일 수도 있고 말이다. 


나를 잘 아는 친구는 나에게 절대로 사업을 하지 말라고 했었다. 너는 다 퍼주다가 돈도 못 벌고 망할 거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내가 피고용인일 때도 고용주에게 모든 노동력을 다 퍼주면서 기본 하루 12시간씩 일을 해주며 삶 전체를 갖다 바쳤다. 내가 얻은 것은 약간의 친한 동료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 꿈은 파타고니아 같은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긴 한데 말이다. 파타고니아는 창업주의 유별난 괴짜행각으로 유명한 기업으로 본인들을 환경보호단체로 정의하는 곳이다.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나도 주위에서 뭐라고 하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며 소소하게 내 행복도 찾고 그럭저럭 먹고살면서 나뿐만 아니라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행복해하는 그런 사업을 해보고 싶다. 


그런 사업을 하게 된다면, 나는 오늘의 카페 여자 사장님이나 경주에서 만난 할머니 사장님처럼은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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