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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Oct 04. 2023

역시 고양이가 최고

#치앙마이 일년살기

저녁시간 즈음에,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쇼핑몰 푸드코드에 가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주문을 다 하고 보니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고 밥을 안 먹어도 될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시켰으니 꾸역꾸역 먹어 치웠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식사를 했다.


음식에 관해서는 이런 에피소드가 참 많다. 반드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는 시점인데 심심해서, 우울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식사를 하고 괜히 먹었다고 후회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수백 번인데 매번 이렇게 번번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굳이 먹을 필요도 없는데 음식을 먹는 행위는 숨 쉬는 것처럼 무의식적일 때가 많아서 내가 스스로 인지하고 행동을 중단시키기 어려울 때가 대부분이다.


치앙마이에 와서는 매 끼니 행복하고 즐겁게 먹겠다고 다짐했건만 또 이렇게 뭐에 홀린 듯 밥을 먹으러 나간 나 자신이 꽤나 별로라고 느껴졌다.


음식의 본연의 맛을 음미하면서 행복한 식사를 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친하지도 않은 상사들의 비위를 맞추며 내가 원하지도 않는 메뉴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스몰톡을 빙자한 사생활 침해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부모님과 식사를 할 때면 80% 이상의 확률로 밥상머리에서 혼나서 초긴장상태였다. 지금도 나는 아빠와 식사를 한다는 상상만 해도 소화가 안 된다.


친구들과 식사를 할 때면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잦았는데, 적당히 즐기고 끝내는 경우보다는 결국 술이 나를 마시는 상황이 많아서 역시나 음식의 맛을 기억하지 못했다.


혼자서는 마음 편히 식사하면 좋으련만, 혼자 밥을 먹어도 뭔가 어색하다. 더군다나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려 들어서 오늘처럼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을 먹으러 나가는 일이 발생한다.


아니면, 내가 너무 건강하고 행복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지금의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고 있는 건가?


어찌 되었건, 식사의 키는 내가 쥐고 싶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속도에 맞추어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싶다. 허전함, 스트레스, 우울 같은 감정은 내가 아니고 이 감정들이 아니라 내가 밥을 먹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 옆 콘도에 사는 고양이가 내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떡하니 앉아서 나를 맞이했다. 녀석도 나도 서로의 등장에 깜짝 놀랐는데 내가 곧장 녀석의 턱과 이마를 긁어주기 시작하자 이내 골골 소리를 내면서 편하게 드러누웠다. 그 누가 뭐래 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고양이의 등장이 무슨 하늘의 계시 같았다.


치앙마이에서는, 고양이처럼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고 온 치앙마이인 것을 항상 잊지 말자.


날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나중에는 배를 뒤집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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