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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Oct 06. 2023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겠지

#치앙마이 일년살기

어제도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목 뒤부터 타고 머리까지 올라온 통증에 흐려진 눈으로 일기를 썼다. 그래서 어제 쓴 글은 마음에도 들지 않거니와 결국 가장 안전하게 고양이 만세 만세 만만세로 끝나버렸다. 물론 그게 절대적 진리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일기임에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충 일기를 마무리하고, 거의 한 시간 동안을 각종 스트레칭 영상을 보며 목을 풀어주었다. 특히 흉쇄유돌근이라는 곳이 너무 아파서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해준 자리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효과는 꽤 좋아서 밤에 잘 잤다. 평소에 자세를 똑바로 하고 매일 스트레칭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늘 증상이나 문제가 생겨야 행동을 취한다. 하지만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어떤 암은 거의 무증상이다가 증상이 생겼다면 이미 중증이라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노력해서 증상을 없애고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행이다. 


스트레칭을 따라 해 보고 효과가 좋았던 영상

영상 1 (30분 분량)

영상 2 (10분 분량)


치앙마이 도착 초반에 공황발작이 일어나서 금주를 시작했고, 목이 너무 아파서 스트레칭도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면 내가 겪은 고통에 오히려 감사해야겠다. 고통이 감사한 것이라니,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치앙마이는 우기의 끝물을 맞이했고 점점 더 관광객이 들어오는 추세다. 11월에는 러이끄라통이라는 치앙마이 최대 축제가 있어서 방콕-치앙마이행 항공권 가격까지도 올라가는 시기라고 한다. 나야 어차피 관광객이 아니라 1년 거주자이니 번잡한 곳을 피하고 숙소와 학교, 체육관 정도만 오가면 평소와 다름이 없는 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거주자의 입장에서, 치앙마이는 방콕보다는 덜하지만 꽤나 시끌벅적한 도시에다가 매연도 심하고 비행기 소리 시끄럽고 해변도 없고 물가도 점점 올라서 왜 이렇게까지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비행기표값도 너무 뛰어서 12월 최대 성수기에 한국에서 치앙마이에 오려면 왕복 100만 원대에 육박하는데 말이다. 


물가로 말할 것 같으면, 계속 오른다. 오늘도 자주 가는 허름한 노상 카페가 커피 가격을 올린 것을 보았다. 지금 묵고 있는 숙소도 이미 50만 원 대지만 내년에 가격을 올릴지도 모른단다. 한 달 살기 숙소 중 100만 원을 넘는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학원도 내가 결제한 이후 기수부터는 가격을 올렸다. 인플레이션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치앙마이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저렴한 물가이기 때문에 이 메리트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물가가 오르니 이에 맞추어 가격을 올리는 것도 있겠지만 치앙마이의 인기가 많아지고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니 가격을 올리는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치앙마이를 찾는 여행자들 특히 여행 블로거나 유튜버들은 입을 모아 치앙마이의 저렴한 물가를 찬양한다. 여전히 길거리 음식은 100바트(4천 원) 이내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 한국에서는 국밥 한 그릇 가격인 금액으로 고급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2~3만 원대로 마사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잠깐 본 유튜브 영상에서는 한 유튜버가 여성 접대부와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즐겼는데 가격이 6만 원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영상을 올렸다. 가격에 대한 만족도도 상대적이다. 


치앙마이 시내보다도 더 시골에서 지내본 나에게는 치앙마이 시내는 매우 번잡하지만 그렇지 않은 여행자들의 입장에서는 이곳은 도시임에도 매우 평화롭고 여유로운 동네일 것 같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살아온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슬로 라이프를 즐기는 것이겠구나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제 오토바이 택시를 탔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운전기사가 오토바이를 멈추자마자 내리려고 하니까 기사님이 나에게 'slow, slow, here thailand'라고 하더라. 나 같은 손님을 태워본 것이 한두 번은 아닌 것 같은 기사님의 대응이었다. 오토바이가 다 멈추고 나서 천천히 내려도 될 텐데 한국에서는 교통수단에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니까 습관대로 하다가 기사님의 정중한 한 소리를 들었다. 


혹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자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치앙마이에 왔더니 사람들이 극찬하는 것에 비해서는 별로다라는 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인도가 떠오른다. 10여 년 전에 인도에서 3개월 정도 잘 지내다 들어왔는데 얼마 전 몇몇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니 인도는 사람이 가서는 안 되는, 천하의 쓰레기장 같은 곳으로 표현하더라. 이런 표현을 한 분들은 대부분 위생에 매우 민감한 것으로 보였고 인도인들의 호객행위나 'no problem'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no problem 문화라는 건 그냥 내가 갖다 붙인 말이지만 인도를 경험한 사람들 모두가 수긍하는 내용인데 인도인들은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일단은 no problem이라고 외친다. 버스가 정각보다 2시간 늦게 출발해도, 숙소에서 벌레가 나와도 no problem이다.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걸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뻔히 문제인 것이 보이지만 매우 무시해 버린다. 이게 인도의 문화인 것을 받아들여서 교통수단의 정시 출발은 포기했고 위생상태는 내가 알아서 조심하고 벌레 한 두 마리쯤은 용서하니 인도에서 별 탈 없이 지내다 왔었다. 태국도 비슷한 면이 있는데 생각보다는 위생에 둔감하고 컴플레인을 해도 빠르게 처리가 되지는 않는다. 태국인들도 딱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처리하는 경향이 눈에 보인다. 여기에 자존심도 매우 강해서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컴플레인하게 된다면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해서 그들의 감정을 크게 상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생각해 보니 두 나라 모두 법으로 명시된 것은 아니나 계급이 명확히 존재하는 나라라는 특성이 있다. 두 나라 모두 내가 먼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열심히 한다고 주어지는 것은 없고 부는 소수가 독점한다. 적당히 문제가 생기지 않게만 일을 하면 되지 굳이 머리 아프게 실제 문제를 해결해봐야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없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나면 그들의 행동이 여전히 싫지만 아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벗어나게 된다.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을 무시하고 지나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생각과 사고와 문화가 상대적인 것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다소 편해진다고 해야 할까. 한국에서의 빨리빨리 문화 같은 것은 한국에서만 절대적인 진리이고 타국에 가면 다른 룰이 적용되는 것이다. 


뒷목이 아픈 것에서 시작해서 왜 글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모든 것이 상대적인 것을 이해하면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줄이고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더 많은 행복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산책 나갔다가 슈퍼 앞에서 햇빛을 쬐며 앉아있는 개 두 마리를 보았는데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고급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를 받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아니, 행복했다. 회사에서 고과점수를 최고점을 받지 않아도 이런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왜 이걸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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