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의 생활이 아름답고 활기차기만 하면 좋겠지만 도착하고 두 번째 달에 접어들면서 아픈 날이 더 많다. 일자목 증상이 심해졌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걷기만 해도 지쳐버린다. 나라는 몸의 배터리 속도가 빠르게 닳는 것을 체감 중이다. 전자제품이라면 배터리를 교체해 주면 될 텐데 나 자신의 배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한국에서 친구의 친한 동생이 치앙마이에 여행을 와서 하루 정도 내가 사는 숙소에서 함께 지냈다. 나와 아주 연관이 없는 분은 아니고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이지만 나와는 친하지 않은 분이다. 나와 적어도 10살은 차이가 나는 그분은 함께 다녔던 직장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희망퇴직에 동의하고 퇴사를 한 참이다. 오랜만에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치앙마이에 꼭 오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우리 집에서 머물라고 말씀드렸는데 생각해 보니 집에는 침대가 1개고 그 분과 나는 동성이기는 하지만 한 침대를 쓸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다. 나름의 고심 끝에 침대를 내어드리고 내가 소파에서 잤다. 손님을 소파에 재우면 내가 더 불편하니 한사코 사양하는 그분께 침대 단독 사용을 통보했다.
치앙마이라는 곳에서 타인을 나의 공간에 들일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에서의 타인과의 교류는 나에게 독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어학원, 체육관 등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개인적인 약속을 잡을 만큼 교류는 하지 않는 중이었다. 여행지에서 온갖 친구를 다 만들어서 몰려다니던 과거를 생각하면 나 자신이 낯설 정도다.
이번 타인의 방문은 이 분을 나에게 부탁한 친구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친구는 내가 공황발작을 겪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할 때 나를 도와주었다. 그 도움이 나에게 뭘 바라고 준 도움은 아니겠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해서 친구에게 보답을 하고 싶었다.
싫고 불편한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몸이 힘들기는 했다. 목의 통증 때문에 기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이기도 했지만 그분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굉장히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가 데려간 가게의 음식의 맛까지 걱정했다. 아, 그래 내가 그분의 눈치를 엄청 봤다.
원래도 이런 성격이기는 하다. 그 사람이 누가 되었건 타인의 숨소리까지도 신경 쓰고 긴장한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너무 혼나고 자란 애들이 꼭 이런다. 뭐만 해도 혼내니까 눈치를 엄청 보는 사람으로 자라난 거다. 타인의 관심에 목이 말라있긴 하지만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려워한다. 전 직장에서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떠들고 다녔지만 집에 와서는 지쳐 쓰러져 움직이지도 못했다.
어제저녁, 그분이 한국으로 떠나고 곧장 하루 정도를 앓아누웠다.
타인의 시선이 무섭지는 않은데 여전히 너무도 신경이 쓰인다.
오늘 늦은 오후, 기력을 조금 차리고는 올드타운을 돌아다니다 '왓 프라싱'이라는 유명한 사원에 들어갔다. (나는 거주민이니까 여기에 가는 건 동네 마실 가는 것이다) 오늘따라 왓 프라싱의 정원이 너무도 아름다웠는데 이 아름다운 정원과 사원은 반드시 나보다 더 오래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을 떠올리니 내가 한 고민이 너무도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래, 다 부질없는 고민이다. 나는 그저 타인과 시간을 보냈고 둘 다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꼈다고 해도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다. 타인의 시선에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만큼 시간낭비인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