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일년살기
묵고 있는 숙소에서 같은 층 다른 방으로 옮기기로 했다. 어제 숙소 매니저와 논의를 했고 오늘 오후에 옮기기로 했었다. 오전 내내 짐을 싸고 오후가 되어 매니저에게 말을 하니 '아... 아아아아!'라며 내가 한 말을 아예 잊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바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방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어서 확인이 필요한데 오늘은 바쁘니 내일 옮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성수기 시즌을 코앞에 두고 숙소 매니저들은 눈코뜰 새 없이 바빠 보인다. 나사가 어디 하나 빠진 것처럼 멍한 얼굴이기도 한데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와서 감당하기 어려워 하는 모양이다. 숙소는 한국인들에게 너무 유명해져 버려서 한국인들의 엄청난 연락을 받고 있을 것이고 한국인들은 대부분 매우 많은 질문과 요구를 해대는 까다로운 고객이기 때문에 매니저들이 특히 더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이라면 '돈을 받았으니 이 정도는 빠르게 처리해 줘야지'라는 마음으로 태국인 매니저들을 다그치겠지만 1. 1년 거주자인 나는 단기 여행자들에 비해 시간이 많고 2. 그래봐야 소용이 없는 것을 알기에 나름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를 띠우며 알았다고 하고 말았다. 2번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태국인들에게 직설적으로 잘못을 따지는 것은 반발만 불러오는 행동이다. 선전 포고라고 해야 할까. 정말 큰 일이 아니라면 두 번을 확인하지 않은 내 탓으로 하고 넘어가는 것이 모두의 평화를 위한 길이다.
회사생활을 할 때 뭐 하나만 잘못되어도 쥐 잡듯이 잡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나도 그랬었다. 회사생활뿐이겠는가, 학교 다닐 때도 집에서도 어떤 기준을 정해두고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난 폭격을 받는 일이 허다했다. 어렸을 때 한겨울 내복 차림으로 집 밖으로 쫓겨났던 기억도 난다. 아마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것 같은데 또 아빠에게 혼나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왜 그렇게 공포스러웠던 기억이 많은지. 아빠는 그게 다 내 잘못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그 어떤 이유에서건 아이들에게 폭력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없다. 내가 그 살아있는 표본같은 사람이라 확신한다.
그렇게 평생을 쌓이고 쌓인 것을 지금 치앙마이에서 양껏 푸는 중이다. 태국어를 조금 배우고 운동을 조금 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백수도 이런 백수가 없다. 하루에 한 번 정도 밖에 나갔다 오면 하루 일과가 다 끝나버릴 때도 있고 오늘도 그랬다. 오후에 방을 옮기는 일정이 사라져 버려서 잠깐 나갔다 왔더니 금방 어두워져 있더라.
할 것이 없는 하루는 대부분 먹는 행위를 하며 보낸다. 지금은 교통수단이 없어서 걸어 다니는지라 슬리퍼를 끌고 동네 주변을 어슬렁 거리면서 뭘 먹을까 즉흥적으로 생각을 한다. 오늘의 마지막 식사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음식 노점이 모여있는 거리에서 태국식 소시지와 밥을 사 와서 먹었다. 내가 알기로는 이게 이싼이라는 지방의 소시지인 것으로 아는데 무엇을 넣었는지 약간 신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술을 마시던 시절에는 이게 최고의 술안주였다.
태국인들은 대부분 외식을 하고 그래서 어딜가건 간단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노점이 지천에 널렸다. 저녁 시간이 되면 집에 가기 전에 저녁거리를 사서 들어가려는 태국인들로 노점은 항상 붐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건강에 좋은 음식은 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맛은 있다. 이렇게 소시지 4개와 밥 하나를 사니 58바트, 우리 돈으로 2400원 정도 한다. 얼마 전 집에 지인이 왔을 때 갔던 곳들에서는 한 끼에 1인당 기본 만 원 이상은 썼는데 혼자가 되니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왔다.
소시지를 받아 들고 쫄래쫄래 걸어서 월세 56만 원짜리 나름 고급 콘도의 내 방으로 돌아왔다. 월세 56만 원짜리 콘도에 태국인은 한 명도 살고 있지 않다. 다 외국인 관광객뿐이다.
유튜브를 보면서 뒹굴거리다 일기를 쓰러 책상 앞에 앉은 참이고 일기 쓰기가 끝나면 또 뒹굴거리다가 잘 거다. 걷기만 하다 보니 생활 반경이 너무 제한되어서 내일은 새것이 되었건 중고가 되었건 스쿠터를 장만하러 가볼 생각이다. 물론 급하지는 않다. 맘에 들지 않으면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구매를 미룰 것이다.
어제 저녁에 뒹굴거리며 인스타그램 게시글 하나를 봤는데 미국 군인 출신인 강연자가 자신은 번아웃을 겪어본 적이 없다고 한 내용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도 일단 한 번은 꾹 참고 해야 할 일을 끝낸다고 한다. 그리고 나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번아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나 뭐라나. 이 사람이 나의 백수생활을 본다면 혀를 내두르겠다 싶었다.
물론 나도 치앙마이에 오기 전에는 엄청나게 많은 계획을 갖고 왔지만 일단 도착하고 보니 지금은 속도를 높이고 싶지 않다. 나를, 그리고 남을 다그치는 건 평생을 해온 일인데 그걸 좀 안 하면 뭐 큰 일이야 나겠는가.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제품을 구현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직원들을 그렇게도 괴롭혔다. 어떤 직원에게 나사가 하나도 안 보이는 제품을 디자인하라고 지시했는데 나사를 하나를 남겨두고 성공하자 그 직원을 해고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 나는 그냥 나사 몇 개 보이는 제품을 써도 괜찮다.
물론 이렇게 글을 써두고도 쫓기는 마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까지 온 것도 나에게는 꽤나 대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