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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Oct 13. 2023

도시를 벗어나면 보이는 것들

#치앙마이 일년살기

이동수단의 힘이란 대단하다. 스쿠터가 생기자마자 활동반경이 적어도 10배 이상은 넓어졌다.


치앙마이는 10여 년 전부터 종종 오던 곳이고 올 때마다 스쿠터를 타서 익숙하지만 오늘은 평소에는 스쿠터로 가보지 않았던 먼 곳으로 나가보았다. 멀어봐야 스쿠터로 25분 정도의 거리지만 치앙마이 외곽도로는 3~4차선 정도의 넓은 도로인 데다가 큰 트럭도 함께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한다.


110cc 스쿠터를 타는 나는 최고 속도를 45km 정도밖에 내지 못하는 쫄보에다가 2차선이 넘어가면 차선 변경을 잘하지 못한다. 치앙마이의 도로는 대부분 일방통행이며,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종종 100m 정도마다 설치된 U턴이 가능한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차들이 달리는 3차선 이상 도로에서 나 같은 쫄보가 1차선에서 3차선까지 차선을 변경해서 U턴을 한다는 것은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과 비슷하다. 겁이 날 때면 잠시 갓길에 스쿠터를 멈춰 섰다가 뒤에 차들이 안 올 때까지 기다려서 차선 변경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되도록 치앙마이 시내 밖의 도로는 타지 않으려고 하는데 오늘은 운전의 힘듦을 감수한 보람이 충분했다.


Fernpress at Lake


대체 이 카페를 왜 가보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숙소를 시내 외곽으로 옮기려고 생각하는 중이고 구글맵에 카페가 보이길래 동네 구경도 할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도착을 하고 보니 카페는 치앙마이 대학교의 분점이라고 해야하는 부지 안에 있었다. (본점은 치앙마이 시내쪽에 있다) 치앙마이 시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아, 물론 서울 사람에게는 치앙마이 시내도 충분히 자연친화적이지만 치앙마이 외곽으로 나가면 자연의 규모는 훨씬 더 스케일이 커진다.



치앙마이 외곽의 고속도로 같은 것을 쭉 따라 달리다가 U턴을 해서 어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이런 풍경이었다. 태국은 항상 이렇다. 멋 없는 도로를 따라 달리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짜잔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 나타난다. 가끔은 마법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사진으로는 분위기를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이 부근이 다 숲이었다. 카페 앞마당에는 이렇게 호수도 펼쳐져 있었다.


커피와 식사 하나를 시키고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커피 가격은 3천 원 즈음하는데 치앙마이 시내라면 100바트를 넘게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맛이었다. 음식은 똠얌 오믈렛이라고 똠얌꿍과 오믈렛이 함께 나오는 음식이었는데 이 먼 거리까지 스쿠터를 타고 달려온 피로를 잊게 해주는 맛이었다.


내 앞 뒤로 모두 중국분들이셨고, 너무 시끄러워서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야 했지만 그들도 즐거워서 크게 떠들고 있었던 것이겠지. 호숫가 주위를 한 바퀴 산책하고 카페 근처에 있는 유명한 사원인 왓 프라탓 도이캄으로 향했다.


이곳은 치앙마이 시내에서 멀지 않은 도이수텝 사원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현지분들에게는 유명한 사원으로 10년 전인가 태국인 친구가 데리고 와주었던 곳이다. 카페에서 도이캄 사원 가는 길은 너무 아름다워서 이 길을 달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졌다.


치앙마이 외곽으로 나가면 이런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도이캄 사원, 저 큰 불상이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불상은 태국 전국에 흔하다. 푸켓에도 빅부다라고 비슷한 것이 있다. 사원만 보면 도이캄 사원보다는 도이수텝 사원이 더 아름답다
도이캄 사원도 도이수텝과 마찬가지로 치앙마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10년 전, 태국인 친구와 이곳에 왔을 때도 인생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시기였는데 나이를 먹었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도이캄 사원은 10년 전과 크게 변한 것이 없었고 변한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이번 치앙마이 1년 살기는 모든 여행이 그렇듯 삶의 축소판 같다. 공황발작이 왔을 때도 있고 아파서 앓아누워 있을 때도 있고 열심히 운동이나 공부를 할 때도 있고 오늘처럼 치앙마이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도 있다. 이곳에서의 하루가 늘 오늘 같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만 거의 두 달 전에 공황발작이 와서 죽겠다고 숙소에서 혼자 울부짖었을 때를 생각하면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내기만 해도 큰 발전이고 감사할 일이니 아쉬울 것은 없다.


그래, 10년 전에 치앙마이에 있었을 때는 훨씬 젊었지만 삶이 너무 두려웠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전혀 모르겠었다. 부모님에게 독립하지도 못할 때였고 그나마 할 수 있는 일탈이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뿐이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커리어라는 것을 전혀 시작하지 못했었다.


엄청난 두려움의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내고 나도 커리어라는 것을 시작해서 10여 년을 일만 하다가 이렇게 다시 치앙마이에 와 있다.


공황발작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결국은 자연스럽게 다 지나갔다.


두려움이라는 것에 압도될 필요는 없다. 10년 전의 나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10년 후 지금의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앞으로 10년은 지난 10년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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