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일기쓰기
EBS의 위대한 수업 영상을 즐겨보는데 오늘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 대학교 교수의 강연 영상이 올라왔길래 봤다.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 여러 한국인들과 토론을 하는 형식의 강의였는데 영상 첫 부분에 마이클 샌델 교수가 던진 질문이 계속 마음속에 남았다.
내용은 능력이 능력주의로 변하는 순간 폭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능력주의를 채택하여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게 되면 능력주의는 패자에 대한 가혹한 태도를 키우게 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 체제에서 승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때문에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패자들을 무시하며 성공에 보탬이 된 사람들의 역할을 잊는다. 이러한 승자의 태도를 마이클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적 오만'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러한 태도는 나도 가졌었고 당해봤으며 지금은 그로 인한 후유증을 아주 오래 겪고 있는 중이다.
학창 시절의 나는 그래도 공부를 꽤 잘했고 서울의 이름난(이렇게 써놓고 보니 웃긴다)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성적이라는 성취는 오로지 나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은연중 소위 말하는 유명하지 않은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에게 우월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 커진 이유는 아빠의 영향도 컸는데, 어려서는 딸이라고 남동생과 차별을 하던 아빠가 내가 인서울 하여 유명한 대학교에 입학하자 적어도 대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는 동생과의 차별을 멈췄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한참 동안은 내가 어떤 능력적 우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고 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회사에 입사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그 능력주의라는 것에 내가 호되게 당했다. 나는 주로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는데 이런 회사의 임원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특히나 강해서 회사의 성과가 오로지 창업자나 임원인 자신들의 고귀한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게임 하듯이 의사결정을 밥먹듯이 뒤집었다. 그 바뀐 의사결정에 따라서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은 나 같은 부하직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직원들이 어떠한 고생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나의 결정이 맞고 훌륭하니 너희는 입을 닫고 그냥 시키는 대로 따르라는 태도였는데 이 과정에서 말로는 다 형언할 수 없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인간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자율성은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자율성이 박탈당한 상태로 오래 일했다. 나는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라는 달콤한 열매 앞에서 패자의 태도를 받아들였고 내면의 어딘가부터 곪아 썩어 들어가기 시작해서 결국은 회사를 탈출해 치앙마이에서 요양생활을 하고 있다. 곪고 썩었던 것을 치유하고 패자의 사고방식을 떨쳐내는 데에는 한동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능력주의라는 것은 여행을 할 때도 심심치 않게 목격했다. 인도 여행을 갔을 때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대학교에서 영문학를 전공한다는 배낭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다. 택시기사가 그에게 한국돈으로 2천원 가량의 소소한 사기를 치려고 했는데 이에 격분한 그 남성은 기사에게 쌍욕을 했고 이때 "어디서 감히 너 같은 게 나에게 사기를 치려고 들어!!!"라는 말을 한 것을 들은 기억이 선명하다. 한국에서도 초엘리트 집단에 속한 그 남자는 엄청난 능력주의에 젖어있는 것으로 보였고 인도라는 못 사는 나라의 택시기사가 자신에게 감히 사기를 치려고 한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런 경우는 인도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라오스 등 한국보다 생활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나라에서는 종종 목격했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현지인 종업원들을 하대하고 하인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한국인=승리자, 능력자였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수영장이 딸린 한 달 14,000바트(56만원)짜리 월세방은 태국의 일반 회사원들은 쉽게 머물기 어려운 금액이라고 했다. 내가 그들보다 뭐가 잘난 것이 있어서 이런 것을 누리겠는가. 그저 내가 알 수 없는 국제정치의 어떠한 작용 때문에 국가 간 화폐의 가치에 차이가 생겼고 그 덕을 봐서 태국에서 얼마간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심신의 안정을 되찾기 위한 곳으로 태국을 선택한 까닭은 태국에서의 여유로운 생활을 통해 한국에서 당한 패자 취급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가진 재산이 태국에서는 적어도 30% 이상 더 높은 가치를 지닐 것이고 높아진 재산의 가치를 통해 위로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닐까.
내가 이곳에서 누리는 많은 서비스들은 낮은 임금으로 그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태국인 노동자들로 인해 가능한 것이니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곳에서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타인에 대해 하찮은 우월감 같은 건 갖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자. 결국 나중에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저 사람보다 잘났다는 우월감 보다는 내가 저 사람과 감정적으로 교류하며 행복하게 지냈다는 추억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