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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Oct 28. 2023

인생의 한 번쯤은 치앙마이

#치앙마이 일년살기

어제 무에타이 수업에서는 3분 5라운드의 미트 훈련, 3분 3라운드의 스파링을 하면서 체력을 쥐어짠 것도 모자라 윗몸일으키기 100개, 무릎 대고 팔 굽혀 펴기 100개, 샌드백을 앞발로 차는 push kick 100개까지 하고 나서야 수업이 마무리되었다. 결과는? 힘들어서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도 못했고 다음날인 오늘까지도 근육통이 상당하다.


그래서 오늘은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카페에 가서 책이나 읽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철학책 치고 예외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이 책을 두고 누군가는 제목을 위트 있게 잘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제목뿐만이 아니다. 내용도 상당히 알차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14명의 철학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철학자와 관련된 곳을 기차(익스프레스)로 여행하며 해당 철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요즘 유행하는 오렌지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샷에 물 대신 오렌지주스를 넣어 만든다. 호불호가 갈리는 메뉴인데 나는 너무 좋아하는 메뉴


한 챕터 당 한 명의 철학자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챕터 씩 읽는 중이다. 철학자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철학자들과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다. 그들이 일평생 했던 고민의 결이 내가 하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신 나는 머릿속에 중구난방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워서 고통스러운데 철학자들이, 그것도 모자라서 이 책의 저자가 철학자들의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하여 준 것을 읽으며 내 생각까지 같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오늘은 [10. 세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이라는 챕터를 읽었다. 세이 쇼나곤은 일본 헤이안 시대라고 하는 900년대 말에 태어나 활동한 여성 작가로 궁에서 왕족을 모시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궁녀처럼 왕에게 종속된 노비 같은 존재가 아닌 황후에게 개인적으로 고용된 직업 궁녀였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세이 쇼나곤이 유명한 이유는 일본에서 최초라고 여겨지는 에세이집을 낸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썼다. 지금으로 치면 블로그 글 같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작가는 세이 쇼나곤이 자신의 취향을 양껏 드러낸 것을 높게 샀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명확히 알았고 그것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썼다. 자신의 생각이 자신만의 관점과 생각일 수 있도록 치열하게 노력했다. 특히 질 좋은 종이를 무척 좋아했다고 하는데 일본 오타쿠의 시초 같은 사람이려나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세이 쇼나곤뿐만 아니라 그 시기의 일본은, 그리고 지금도 종이에 대해 덕질하는 문화라고 한다)


부모님이 원하는 삶, 회사가 원하는 삶을 살다가 더 이상은 그렇게 살지 못하겠는 거라. 그래서 떠나온 치앙마이인데 때마침 세이 쇼나곤에 대한 내용을 책에서 읽으니 일면식도 없는 과거의 사람에게 크나큰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남은 치앙마이 생활을 통해 무엇을 하고 지내야 할지 조금은 더 명확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연구해야지.


나는 재벌집 자제가 아니고 치앙마이 생활이 끝나면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어쩌면 이번이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고 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만 생각하고 산 이번 일 년이 지나고 난 이후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인생의 한 번쯤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치앙마이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굉장히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놀랍게도 카페 앞 풍경


내가 좋아하는 것

프로페셔널리즘을 지닌 운영진들이 있는 체육관 (그렇지 않은 체육관도 많다)

조용한 카페

도서관

한적한 시골 도로를 따라 오토바이 타기 (시속 40km 선에서)

친구들과의 적절한 관계 (죽고 못 사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안부 묻기)

새로운 나라/동네 탐험하기


내가 싫어하는 것

회사 회식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술자리)

자식들에게 효도 강요하는 부모님들 (우리 부모님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남의 집 이야기 듣기 (누가 집을 샀다더라)

단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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