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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Nov 04. 2023

혼자의 즐거움

#치앙마이 일 년 살기

요즘 고국은 희대의 사기꾼 전청조 때문에 시끄러운 것 같다. 아마 한국에 있었고, 회사를 다니는 중이었다면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주도 하에 이 이야기만 정신 사나울 정도로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 한국이 아니라 치앙마이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온갖 미디어가 달려들어서 이 사건에 대해 물고 씹고 뜯고 보는 중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고 스타트업은 투자자들의 투기판이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전문성과 권위를 이용하여 상대방에게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 씨 같은 인간들은 정말 많이 만났다. 내 말을 들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뉘앙스로 말을 하면 주위에 돈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드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어떤 이는 투자 심사역 일을 하면서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전문가인양 말하고 다녔는데 그가 종종 하던 말은 '내가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안다'였다. 학부에서 깨작거린 전공 지식수준으로 자신을 '전문가'라고 포장한 것이다. 그것도 단독이 아니라 복수 전공이었을 텐데? 그가 그 말을 한 이후 나는 그가 하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전 씨도 그렇고, 투자 업계도 그렇고 내가 아니라 남을 믿어서 탈이 난다. 너무 쉽게 믿는다.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보면 인간은 권위가 있다고 여겨지는 상대방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심한 수준이다.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남의 말을 듣고만 살았을 때 인생이 꽤나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기에 이제는 최대한 남의 말은 안 듣고 살려고 노력 중이다. 투자 사기처럼 멀리 가지 않아도 가장 가깝게는 가족 관계만 봐도 그렇지 않나. 부모님/남편/부인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은 과연 행복한가?


오늘은 벼르던 오토바이 세차를 했다. 치앙마이 곳곳에는 셀프 세차장이 있는데 30바트, 우리 돈 1200원에 고압수와 세차폼을 사용하여 깔끔하게 세차를 했다. 하지만 내가 타는 오토바이는 혼다의 Zoomer X라는 기종으로 네이키드 바이크라고 해야 하나, 오토바이 내부가 외부로 다소 드러나 있는 기종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안쪽으로 흙먼지가 많이 쌓여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나는 내가 이럴 줄 알았는데 오토바이 일부를 분해해서 안쪽까지 깨끗이 다 닦아내고야 세차를 마무리했다. 다해서 총 4시간이 걸렸다. 원래 뭘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기도 하고 기계를 분해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오토바이를 분해하여 청소하고 나니 성취감이 느껴지는 거라, 그래서 내가 건드릴 수 있는 선에서는 오토바이 정비를 스스로 해보기로 했다. (렌트가 아니라 치앙마이에서 중고로 구매한 내 거) 아마 치앙마이에서의 1년이 끝나면 나는 어느 정도는 오토바이에 대해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오토바이로 씨름을 하는 중간에 동네에서 또 기가 막힌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저렴한 물가 때문에 장기 거주자들이 많은 싼티탐이라는 동네에 있는 카페다. 세상에, 아아 한 잔에 30바트라니. 가격표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Areemitr Coffee


가격에서 유추할 수 있지만 당연히 에어컨은 없는 집이고 대부분의 손님이 테이크 아웃을 해가지만 카페 옆에 잠시 앉았다 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얼음물을 내어 주셨다
매우, 그냥 동네다. 싼티탐의 이런 모습이 좋아 장기거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근처에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려줘서 유명해진 커피 노점이 있는데, 거기 커피도 한 잔에 45바트는 받는데 여기는 머신으로 내려주면서도 30바트다.


세차를 하고 지쳐서 커피를 수혈하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바리스타님이 얼음물까지 한 잔 가져다주셨다. 고작 30바트짜리 커피에 이 무슨 황송한 서비스인가. 15분 정도 머물면서 아, 너무 행복하다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사실 가격은 상관 없는데 커피는 너무 맛있고 바리스타님은 친절하고 동네는 평화로웠다.


치앙마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상태가 매우 안 좋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상태가 극악으로 좋지 않던 시기에서 두 달이 지났고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처리했다. 금주를 시작하고, 비자도 받고, 오토바이도 사고, 운동도 하고, 태국어도 배우고. 요즘에는 상태가 꽤 좋아졌고 3일 전부터는 밤에 제대로 자기 시작했다. 원래는 새벽이 다 지나도록 잠을 못 자서 '잠에 든다'는 기분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3일 전부터 잠에 들기에 성공했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감을 느끼는 중이다.


잠을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했는데 이제야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로 추측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해내는 것의 경험치가 계속 쌓이면서 자신감이 회복되고 스트레스도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치앙마이에 오기 전에 회사의 성과평가라는 것에 시달리다 와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스스로 해내는 것이 너무 즐겁다.


앞으로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영원히 못하게 된다고 해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알아서 해내는 삶이 만족스럽다.


잠도 잘 자고, 세차도 하고, 좋은 카페도 발견하고, 무에타이 수업도 나갔다.


회사에서 성과평가 A등급을 받는 것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는 즐거움이다.


세차로 매우 노곤했지만 무에타이 수업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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