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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Nov 05. 2023

오렌지 아메리카노는 맛있습니다

#치앙마이 일년살기

아침부터 유튜브로 10분 명상 프로그램을 따라 해보고, 10분 스트레칭을 하고 집을 정리한 후 카페에 온 길이다. 어제 왔던 카페가 꽤 마음에 들었어서 다시 왔다. 


오렌지 아메리카노라는 메뉴를 시켰는데 에스프레소에 물 대신 오렌지주스를 섞은 메뉴다. 태국에서는 굉장히 유행하는 듯하고 한국에서도 종종 보이는 메뉴다. 어학원의 태국인 선생님은 이 메뉴를 별로라고 하는데 나는 너무 좋아해서 "이건 반드시 마셔봐야 해!"라면서 오렌지 아메리카노를 옹호했다. 오렌지 주스의 달고 신 맛과 에스프레소의 씁쓸한 맛이 꽤나 잘 어울린다. 작년에 왔을 때는 여기에 토닉 워터까지 들어간 메뉴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다시 돌아오니 그 메뉴는 보이지 않는다. 오렌지 주스 + 에스프레소 + 토닉워터 + 얼음을 섞으면 꽤나 훌륭한 음료가 만들어지니 시도해 보시길!


오렌지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건 파인애플 피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려나


유튜브에 orange espresso tonic이라고 검색하면 꽤 많은 레시피가 나온다. 토닉워터 대신에 탄산수를 섞어도 괜찮은 맛이 난다.


메뉴를 받아 들고, 오늘은 자리가 없어서 입구 쪽에 앉았는데 햇빛이 짱짱하게 들어오는 거라, 그러자 직원이 달려 나와서 파라솔을 내 쪽으로 옮겨주면서 "햇빛이 뜨겁지, 미안해"라고 말하는데 그게 영업용 멘트일지라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이 카페처럼 적당히 좋은 제품을 판매하면서 적당히 즐겁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어제 쓴 글에서 고국에서 전청조 같은 느낌의 사기꾼을 많이 봤다고 적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큰 부를 원하면서 그에 걸맞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지 못했다. 어설픈 서비스로 1천억 기업 가치로 투자를 받으러 다니는 대표, 사업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의하면서 본인들은 정작 사업에 성공해 본 적이 없는 전문직 종사자들. 이들은 인플루언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미디어에 노출될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의 미디어 속 모습과 실제 모습이 매우 다른 걸 알고 있기에 어찌나 블랙 코미디처럼 보이던지. 이들 중 그 누구라도 내가 지금 있는 카페에서 제공하는 것만큼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냉소적이지는 않았을 거다. 아, 그리고 모두들 정부사업에 참여했는데 규정의 허점을 이용하여 돈은 받았으되 그에 걸맞은 결과물을 내놓지 않았다. 전청조와 분야가 다를 뿐이지 다들 사기꾼이다. 그들을 위해 일한 나도 그렇고.


글을 쓰는 중간에 오렌지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고 타이 밀크티를 시켰는데 이것도 상당히 뛰어난 맛이라 허허, 웃음을 지었다. 왜냐면, 일반적으로 타이 밀크티는 저렴한 재료를 사용해서 인공적인 색소 색깔(주황색)에 너무 단 맛이 난단 말이다. 여기는 실제로 찻잎을 우려서 사용해서 색도 인공적이지 않고 맛도 흔히 먹는 타이 밀크티에 비해서 깊은 맛이 났다. 두 번째 음료를 가져다주는 직원분께 커피가 정말 맛있다고 말씀드리니 직원은 부끄러운 듯 미소 지으며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이 카페의 직원 두 명은 (아마도 부자지간이 아닐까 생각함)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나에게 제공해 주었고 나는 이에 자연스럽게 재방문을 하고 오늘은 음료를 두 개를 시키기도 했다. 이들의 일에 사기는 없다. 정직하게 커피와 차를 만들고 친절하게 서빙한다. 카페 직원분들에게는 별일 아닌 일상일 텐데 나에게는 마음의 울림이 있는 광경이었다.


선풍기가 털털털 돌아가는 카페 야외 좌석 풍경, 주인장이 다육이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 것 같다


다시 나의 회사생활로 돌아가서, 그들이 자주 했던 말 중에 '자동화'라는 말도 있었다. 사람이 일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수익이 창출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똑똑한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말을 한 사람들은 자동화를 자신들 멋대로 해석했다. 고객의 편의를 증진시키고 직원들의 잡무를 줄여주는, 진짜 필요한 자동화에는 시간과 비용을 사용하지 않고 회사의 몸집을 불리기 위해 신사업을 벌이는 데 집중했다. 그들이 말한 자동화는 회사의 대표/경영진인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도처에서 돈이 벌리는 것을 의미했다. 고객과 직원의 불편은 그들에게는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수준은 쭉쭉 떨어졌다. 사업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 보아도 엉망 진창이었다.

(내가 쓴 글이 과장이면 차라리 좋겠지만 오히려 현실은 이것보다 더 심하겠지...)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결국 나의 몫일 것이다. 아마도 내가 부정적으로 표현한 전직장의 대표와 경영진들이 나보다 더 많은 부를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스타트업이, 투자의 세계가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 마음을 따라야겠다.


그래서 내가 과거에 보낸 시간이 후회스럽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런 상황을 경험했기에 그 반대의 상황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음료를 두 잔이나 마시긴 했지만 커피는 한 잔만 마셨다. 회사에 다닐 때는 극도의 긴장상태로 하루에 많게는 다섯 잔까지도 커피를 마셨다. 아, 커피를 제대로 즐기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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