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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Nov 06. 2023

이런 날도 있지

#치앙마이 일년살기

3일째 같은 카페에 출석 중이다. 너무 좋은데, 오늘은 한국인 중년 남성 세분이 카페가 떠나가라 시끄럽게 떠들어서 참다못해 음료만 빠르게 마시고 도망 나왔다. 원래 한 분이 앉아 있다가 친구분 1이 오고 그 이후에 친구분 2가 와서 세 명이 모였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이어폰을 갖고 오지 않아서 모든 대화를 다 들어버렸다. 주식 어플 접속이 안 된단다. 큰 소리로 비속어를 섞어가며 대화하셔서 아, 이건 정말 못 견디겠다 하고 자리를 떴다. 이 카페는 그냥 일반 동네 모퉁이에 있는 작은 카페로 동네 사람들이 와서 조용히 앉아있다가 가는 저렴한 카페인데 치앙마이 하늘 아래 한국어 욕설이 웬 말인가.


어제 마트에 갔다가 최강 데시벨로 무장한 한 무리의 중국인 여성들이 시끄럽게 마트를 휘젓고 다녀서 두통이 왔는데 그다음 날 아침인 오늘은 고국 동포들에 의해 높은 데시벨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 직원들은 친절했고, 그 와중에 새로이 시도해 본 메뉴는 정말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었다. 어제 쓴 글에서 오렌지 아메리카노에 대해 이야기했고 여기에 탄산수를 섞어도 괜찮다고 말했는데 오늘 시킨 음료는 레모네이드+에스프레소+탄산수의 조합이었다. 이야, 이게 또 너무 맛있는 거지. 칵테일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이 화면 오른쪽으로는 한국인들의 욕설이 섞인 대화가 오갔다. 이 와중에 커피는 너무 맛있어서 이것이 인생인가 싶어 웃겼다.


카페에서 도망 나온 이후에는 바쁘게 행정 업무를 처리하러 다녔다. 1. 태국 은행 계좌를 만들고 2. 치앙마이의 특정 도로를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을 신청하고 3. 거주 신고를 위해 이민국에 방문했다.


1.

은행 계좌는 태국 답지 않게 그 자리에서 30분 정도 걸려서 바로 만들었다. 젊은 여직원이 서류 작업을 하면 옆에서 시니어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직원이 계속 감시를 했다. 시니어 직원은 'customer service captain'이라고 쓰인 완장을 차고 어린 여직원이 서류 작업에서 실수한 것이 있는지 계속 살폈다. 감시라고 적은 이유는 어린 직원이 계속 시니어 직원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다. 태국이나 한국이나 회사 생활은 똑같나보다.


계좌를 개설하는 업무는 증빙 서류를 복사하고 서류에 서명을 하는 등 모두 실물 서류를 통해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계좌가 개설되고 나면 은행 어플을 통해 인터넷 뱅킹이나 QR 결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되니 태국 생활이 한결 더 편해질 예정이다.

(한국의 하나은행 등 제휴를 맺은 업체를 통해 태국에서 QR결제를 사용할 수 있으나 매우 느리다!)


2.

치앙마이의 도로 통행증은 치앙마이 공항과 님만해민이라는 구역을 최단 거리로 가로지르는 태국 공군 소유의 도로를 통행할 수 있는 통행증을 의미한다. (wing 41 통행증이라고 부른다) 통행증을 가진 사람들만 이 길을 통과할 수 있다. 대체 공군 소유의 도로를 왜 민간인에게 개방하는가 싶기는 하지만 이 길을 타면 교통체증이 심한 도로를 피할 수 있고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도로 풍경이 한없이 아름답다.

(사실 나는 도로가 예뻐서 통행증을 꼭 받고 싶었다...)


치앙마이 공항 바로 옆에 붙어있는 wing 41 통행 도로, 길이 너무 예쁘고 평화롭다


통행증 신청 서류를 태국어로 작성해야 해서 매우 고생했다. 콘도 직원에게 부탁해도 되었겠지만 오기가 생겨서 스스로 작성했다. 아직 태국어 문자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글씨를 쓴 게 아니라 글씨를 보고 그렸다. 이 과정에서 서류 샘플 양식에 세상 처음 보는 영어 알파벳 같은 문자가 쓰여 있는 거라. 암호를 해독하는 심정으로 검색을 했는데 이것이 일종의 태국어 문자의 약어 버전이라는 것을 알아내어서 문자 해석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대 이집트 문자를 대하는 심정으로 서류 작성에 성공하고 오늘 드디어 신청서 및 통행증 비용 지불을 완료했다. (서류 받으러 한 번 제출하러 한 번, 총 두 번을 방문) 11월에 신청했는데 통행증은 내년 1월 15일에 받으러 오라고 한다!!!! 무시무시한 행정처리 시스템이다. 이 와중에 통행증 발급을 대행해 주는 알바도 있어서 서류를 수십 장씩 제출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100바트짜리 통행증인데 대행을 맡기면 300바트 정도) 태국의 행정처리 시스템은 어렵고, 어려운 업무일수록 대행사나 알바가 있다. 정부와 민간인이 서로 상부상조하는 시스템이라고 해야 할까.


3.

태국에서는 외국인이 90일 이상 장기 거주를 하면 이민국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건 아마도 태국 내에서 진행해야 하는 행정 업무 중 가장 빠르게 처리 가능한 업무일 것이다. 이민국은 자주 방문하다 보니 누워서 껌먹기 식으로 처리.


카페에 가기 위해 나선 것이 오전 9시 반 정도이고 집에 들어오니 오후 3시 반이 넘었다. 하루 종일 이것저것에 시달리다 와서 그런지 피곤해서 한 시간은 낮잠을 잤다.


이런 날도 있다.


그래도 시끄러운 사람들은 내가 피하는 결정을 해서 그 상황에서 빠르게 벗어났고 복잡한 행정 업무들도 다 처리했다. 하루 종일 계속 움직여서 만들어낸 결과다. 오늘의 경험을 통해 태국어 문자의 약어 버전이 있다는 것도 배우고 시끄러운 분들에 대비해 이어폰을 필수로 들고 다녀야 함도 배웠다.


이 정도면 꽤 훌륭한 하루 아닌가. 이 세상에 쓸데없는 경험 같은 건 없다.


오늘 마셨던 음료는 너무 맛있었어서 내일도 가서 또 마셔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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