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최근에 계속 가던 동네 카페로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쪽으로 오게 되었고 이전부터 와보고 싶던 집이어서 들어와 봤다.
여기는 치앙마이 대학교 후문 쪽의 '수안독'이라는 동네에 있는 General Coffee 라는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커피 양이 적고 원두의 로스팅 정도를 선택하라는 말이 없어 다소 실망했으나 맛은 한국에서 3천 원대 커피를 마시는 것에 비하면야 훌륭하다. 느낌상 미디엄 로스팅의 원두.
여기가 홍대인가 치앙마이인가
카페의 느낌은 대학가의 카페 답게 '힙'하다. 홍대나 연남동의 어느 카페라고 봐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노래도 최신 팝송만 흘러나온다. 아, 이 수안독이라는 동네는 근처에 병원이 많고 의료 종사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아주 완전히 대학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서 3분만 더 가면 대학생들이 모여 사는 '랑머'라는 구역이 있는데 그쪽이 더 진정한 의미의 대학가다.
오전에는 일반 서민(다른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들이 모여 사는 구역인 '싼티탐'에 있다가 왔다. 내가 좋아하는, 아아 한 잔에 35 바트 하는 카페도 싼티탐에 있는 카페다. 오늘은 오전에 여기서 물건 수리 노점 아저씨에게 여행 가방의 수리를 맡겼다.
32인치 캐리어를 오토바이에 싣고 간 의지의 한국인, 콘도 직원들도 나를 응원해주었다ㅋㅋ
치앙마이, 혹은 태국에는 이렇게 거리에서 노점을 열고 신발, 가방 등을 고쳐주는 분들이 계시다. 한국에서 너무 저렴한 여행가방을 샀고, 지퍼가 금방 망가져버렸는데 수리를 해주시는 분도 완전히 멀끔하게 고치진 못하셨다. 지퍼 중간 부분이 끊어져 있어서 아예 새것처럼 쓰려면 지퍼 전체를 갈아야 한다.
지퍼를 임시로 수리해 주는 비용은 60바트. 간단한 조치를 해준 것 치고는 저렴한 금액은 아니다. 2,400원을 저렴한 비용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이미 치앙마이 물가에 적응을 해버렸다는 말이다. 그래도 손짓 발짓을 다 써가면서 가방의 상태를 설명해 주시려는 수리공 아저씨와 물건 고치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구글 번역기로 통역을 도와준 다른 손님 아저씨 덕분에 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손님 아저씨는 내가 태국어를 배우러 왔다니 왜 태국어를 배우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태국에 자주 오고 태국을 좋아한다'라고 말씀드렸다. 대답을 들은 손님 아저씨의 표정이 살짝 너그러워졌다고 느낀 건 기분 탓일까. 수리공 아저씨는 가방 수리를 마치고 가려고 하자 영어로 연신 '개런티'라는 단어를 외쳤다. "개런티, 고 백, 컴 백!!" 문제 생기면 다시 오라는 의미로 들었다. 나도 내가 아는 태국어 단어로 답변했다. "폭깐마이 = See you again"
나름 동네에서 유명한 아저씨다, 끊임없이 손님들이 와서 물건을 고쳤다
산티탐에 있다가 이 카페에 오니 다른 세상 같다. 에어컨은 시원하다 못해 춥다. 카페에 오는 사람들도 의사, 간호사 등 어느 정도는 생활 수준이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다. 점심시간이었는데 의료진 복장을 한 사람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수혈하고 점심 시간이 끝나기 전에 재빨리 나가는 걸 보니 그들도 직장인...
어제 갔던 아아 한 잔 35바트 카페는 욕설을 섞어가면서 거칠게 대화하는 한국인들이 있었다면 여기 손님들은 대화를 해도 조용조용히 하다 나간다. (오해 없기를, 35바트 카페도 그 한국인들만 없으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말이 아니라 신기하다. 고작 35바트를 더 내고 이렇게 시원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얻어낼 수 있다니.
나를 둘러싼 환경은 너무도 중요하고 되는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환경에 속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은 이것을 너무도 느낀다.
말끝마다 욕설을 섞어 쓰면서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정서적으로 지쳐버린다. 예민해지고 지금의 이 상황을 견디는 것 이상의 삶을 생각하지 못한다.
아빠가 그랬다. 아빠는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친 욕설과 폭력을 가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 환경에 더 이상 속하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30년이 훨씬 더 넘게 걸렸다. 싫다고 말하는 걸 배우는 데 30년이 훨씬 넘게 걸린 셈이다.
아빠에게 선을 그으며, 그와 비슷한 시기에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던 팀장에게도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주 속 시원한 대응은 하지 못했지만 싫다고 말한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성과였다.
그래, 치앙마이에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은 내가 속하고 싶은 환경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내가 동분서주하며 노력한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환경을 좋아하는지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좋다.
그래서 지금 있는 카페 같은 힙하고 깨끗하고 차분한 환경에 계속 있고 싶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여전히 35바트짜리 커피를 파는, 선풍기만 틀어주는 카페도 좋고 물건을 어떻게든 고쳐서 쓸 수 있게 해주는 길거리 수리공 노점 아저씨도 좋다. 저렴하지만 친절함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환경이다. 에어컨 보다는 사람들의 친절함이 더 좋다.
한국에 있을 때는 퇴근하고 와서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맥주 500ml짜리 두 캔을 마시고 적당히 취한 후 침대에 누워있는 일이었다.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내가 가진 이 소중한 시간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다. 내일 출근해서 털려야 하니까 털리는 걸 대비하기 위한 힘을 비축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혹은 주말에 집에 불려 가서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쏟는 부모님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요즘은 매일매일 어디를 나갈 궁리를 한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환경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 궁리를 한다. 한국의 삶, 특히 부모님에게 선을 그은 것에 대한 부담감과 알 수 없는 죄책감은 엄청나지만 죽어있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이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