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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02. 2023

나와 무에타이의 역사

#치앙마이 일년살기

무에타이 : 태국의 전통 격투기. มวยไทย(무아이타이)는 '타이'의 '무술'(무아이)이라는 뜻


치앙마이 생활 13일 차, 갑자기 찾아온 불안과 우울 증세 극복을 위해 무에타이 체육관에 나간 지 3일째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에타이를 배우는 것은 우울증 극복을 위해 갑자기 결정한 것이 아닌, 애초부터 치앙마이에 온 이유 중 50% 정도가 바로 이 무에타이 때문이었다.


태국의 전통 무술인 무에타이는 쉽게 생각하면 손과 발로 싸우는 입식 격투기 운동이다. UFC 같은 종합격투기에서 활동하는 선수들도 타격을 위해 기본적으로 무에타이를 배울 정도로 그 효과성은 널리 검증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무에타이를 접한 건 2013년 (세상에... 10년... 전...), 태국 북부의 작은 마을 빠이(Pai)에서였다. 


당시는 8개월 정도 긴긴 배낭여행을 하던 시기로 막 인도와 네팔여행을 마치고 태국으로 넘어온 참이었다. 네팔에서 만났던 일행이 태국 빠이에 가서 무에타이를 배웠는데 너무 재미있었다고 페북으로 알려주었고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곧장 빠이로 향해 체육관 한 달을 등록해 버렸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주 6회, 오전 오후 2시간씩 운동하는 비용이 월 8천 밧, 우리 돈 32만 원 정도. 물론 오전 오후 운동을 다 나간 기억은 거의 없다. 한 타임만 운동해도 충분히 힘들기에.

당시의 수업 모습, 수업 후에는 나를 가르쳐준 스승에게 예를 표한다

이 당시에는 같은 체육관에서 계속 비슷한 사람들과 운동하다 보니 금방 일행들과 친해져서 나를 포함한 외국인 친구 4명과 어울려 거의 한 달을 같이 식사하고 놀러 다니는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일행이 생겼고 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아서였나? 이후 나에게 태국 무에타이는 절대적으로 즐거운 경험으로 각인되었다. 


처음 무에타이를 배우던 시절... 10년 전이네...


이후에도 태국에서 여러 체육관을 다녔는데 치앙마이와 푸켓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총 7개의 무에타이 체육관을 다녔다. 특히 푸켓에서의 경험이 특이했는데 푸켓은 푸켓 탑 팀, 타이거 무에타이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에타이 체육관들이 자리 잡은 곳으로 격투기 선수들이 실제로 훈련을 위해 찾는 곳이기도 했다. 


푸켓에 있었을 때의 나는 정말 말 그대로 미쳤는데, 하루 두 타임의 무에타이 수업을 듣는 것도 모자라서 종종 주짓수 수업이나 크로스핏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때가 만으로 30세가 되기 거의 전후여서 그랬나... 그게 진짜가능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푸켓 탑 팀 소속으로 시합까지 나갔었다. (장렬히 패배함)


실제로 이 무대에 내가 올랐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도 무에타이를 계속했을까?


첫 번째로는 내가 잘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엘리트 체육인 수준은 아니지만 운동신경이 괜찮은 편으로 체고에 가지 않겠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부모님이 내 재능을 일찍 알아보고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시켰다면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계속 나는 세상의 기준에 의하면 실패를 거듭했고 이 와중에 무에타이는 내가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활동 중 하나였다. 무에타이를 하고,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자존감이 올라갔다. 


두 번째는 내 몸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아빠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받아본 것이 대학 졸업 무렵 내가 15kg 정도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때이다. 늘 과체중에 시달려오다가 처음으로 실제로 살을 뺐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극단적인 식단 + 꾸준한 운동을 진행한 결과였다. 다이어트에 성공을 한 후 얼마간 몸무게를 유지하다 배낭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5kg 정도 살이 붙었다. 나는 저울 위 무게에 집착했고 다시 원상복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여행 중에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태국 빠이로 향한 것이다. 실제로 무에타이를 하면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적은 없는데 (식단관리를 못함), 그래도 내가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적어도 살은 더 찌지 않게 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며 위안이 되었다. 


세 번째는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배운다는 그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태국처럼 더운 나라에서 무에타이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반쯤 죽는 일이다. 내 몸에서 이렇게 많은 땀이 흐를 수 있는지 처음 알았고 그렇게 땀을 흘리면 몸에서 비릿한 냄새가 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체육관에 가서 몸이 초주검이 되는 그 과정 동안 나는 세상 모든 잡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번듯한 직장을 갖지 못했고 그래서 부모님에게 면목이 없다는 그 어마무시한 불안감을 어마무시한 운동량이 막아준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전 세계에서 무에타이를 배우러 온 여행자 혹은 선수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었다. 주로 혼자 가는 여행에서 무에타이를 배웠는데 무에타이를 배우러 가면 친구를 사귀게 되고 소속감도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2023년, 내가 치앙마이에서 무에타이를 하는 이유는 위의 세 가지 이유 전부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고, 살을 빼고 싶고, 잡생각을 잊고 싶고, 소속감을 얻고 싶다. 

(친구 만들기는 좀 다른데 지금의 불안한 상태로는 인간관계를 넓히고 싶지는 않다.)


특히 최근 경험하고 있는 극심한 우울과 불안 증상을 완화하는데 무에타이가 큰 역할을 하는 중이다. 우울증에 운동이 특효약이라는데 맞는 말이다. 하루에 2만보를 걷고, 한 시간 동안 무에타이를 배우니 매우 지쳐서 하루의 절반은 누워서 지낼 정도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울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 방지가 되는 기분이다. 온몸이 힘들어서 다른 생각을 못하고 있다. 하루 절반은 누워서 끙끙 앓으니 시간도 잘 간다. 


10년 전, 처음 무에타이를 배우던 시절과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르다. 계산을 해보니 당시보다 20kg이 늘어났다. 하루에 2시간은커녕 한 시간짜리 수업만 들어도 힘들다. 이전과 다르게 펀치에 힘이 실리지 않고 코치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수준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무에타이를 할 수 있다. 아직 킥을 차는 실력은 죽지 않아서 코치들이 어디서 배웠냐고 묻는다.  


목적이 있어 무에타이를 하지만 예전처럼 그 목적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내가 무에타이를 하는 목적은 그냥 꾸준히 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는 달성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거창한 계획은 없다. 그냥 체육관에 주 4회 이상 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유일한 목표다. 


비단 무에타이뿐만 아니라 내 삶도 그랬어야 하지 않나, 앞으로는 그렇게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온갖 자기 개발서는 다 읽으면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노션, 아사나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각종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나 자신을 감시했다. 퇴근 후에도 책을 읽거나 수업을 찾아서 들었다. 할 줄 아는 게 많아야 했고 이걸 회사에 알려야 했다. 물론 나 말고도 다들 그렇게 했다. 이래야 훌륭한 직장인이었고 월급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이 습관이 몸에 배어서 치앙마이에 올 때도 그러한 계획을 세우고 왔다. 가방 한가득 책이요 심지어는 여기서 코딩 수업을 들을 생각까지 했다니까. 


안 그래도 가족과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여기 와서 그걸 비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였나, 공황발작이 왔고 매일을 울며 시간을 보냈다. 


불안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내가 이런 극심한 불안과 우울 증상을 겪고 있는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의 뇌가 적색경보를 내린 것이다. 너 이러다 죽어, 그만해. 


이 적색경보는 단순히 시끄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강력해서 나는 각종 계획을 파기함과 동시에 술까지 안 마시고 있다. (적당히 즐기면 좋지만 이미 나는 불안과 우울의 노예가 되어서 술이 나를 마시는 지경이었다.) 


어쩌면 치앙마이 도착 5일 차에 겪은 공황발작은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첫 번째 신호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발작이 오거나 눈물이 나온다고 해도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을 것 같다. 


9년 전 푸켓에서 산 글러브를 이번에 가져왔다. 오늘도 열심히 운동했다. 나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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