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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02. 2023

무에타이를 할 때는 몸에 힘을 빼야 한다

#치앙마이 일년살기

힘을 빼야 더 강한 힘이 나오는 법


어제 쓴 글에 이어 오늘도 무에타이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만으로 37세 한국 여성인 나는 지금 태국 치앙마이에 있고 태국 전통 무술인 무에타이를 배우고 있으며 띠엄띠엄 하기는 했지만 거의 10년 차 무에타이 애호가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무에타이나 복싱, 주짓수 등 격투기 운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궁극의 게임이 아닐까 싶다. 상대와 직접 부딪혀 가며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변수가 너무 많아서 공격 한 번을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UFC와 같은 격투기 운동에서 정타를 맞춰서 상대를 쓰러뜨리면 주위에서 난리가 나는 것이다. 왜냐면 그게 정말로 어려운 일이니까. 격투기 종목의 스파링(대련, 실전은 아니고 연습게임)은 3분 정도만 해도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된다. 연습할 때는 잘 되었던 공격 동작이 움직이는 상대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미꾸라지를 맨 손으로 잡는 느낌이다. 살면서 크로스핏, 웨이트 트레이닝, 등산, 수영 등 다양한 운동을 해보았지만 격투기 운동은 그중에서도 top에 속하게 힘들다.


무에타이 같은 경우는 킥 공격이 주가 되는 운동인데, 이 킥이라는 것이 또 차기 어려운 것이라. 예를 들어서 오른발로 킥을 찬다고 하면, 디딤발이 되는 왼발을 같이 컨트롤을 해야 오른발 킥이 제대로 상대에게 꽂힌다. 왼발의 각도와 높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킥의 궤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무에타이의 킥은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표인 킥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머리, 옆구리, 허벅지, 종아리 등을 겨냥하고 차는데 제대로 된 킥을 찰 때의 모습이나 느낌은 흡사 다리로 채찍질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킥이 채찍처럼 휘어져서 상대방에게 꽂힌다. (꽂힌다는 말만큼 무에타이 킥을 정확히 표현하는 한국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른발 킥을 차는데 왼발을 틀고 발꿈치를 살짝 들어주었다, 왼손은 상대 공격을 대비하여 턱 앞으로 올려서 커버를 해주고 있다. 킥 하나 차는데 고려할 게 정말 많다.

초보자들의 경우 채찍처럼 꽂히는 킥의 자세를 구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자세가 엉거주춤 이 되거나 킥을 차기 위한 준비동작이 너무 커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리 코치들이 열심히 알려줘도 본인이 스스로 킥의 메커니즘을 깨닫게 되어야 제대로 된 킥을 찰 수 있게 된다. 


무에타이 킥의 자세가 드디어 이해가 되었다면 그다음 단계는 킥을 차기 위한 준비동작을 최소화 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여기서 초보자와 숙련자가 구분이 되는데 초보자의 경우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발로 킥을 차건, 반대발로 킥을 차건 준비 동작이 너무 티가 난다. 킥을 차기 전에 준비 동작만 보고도 상대가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활약 중인 류현진 선수가 공을 던질 때 체인지업, 커터, 싱커 등 구종 별로 완전히 투구 폼이 같아서 타자가 어떤 구종이 들어올지 대비할 수 없고 그래서 류현진 선수가 대단한 투수라고 하지 않는가. 무에타이 킥의 경우도 킥의 메커니즘을 이해했다면 내가 어떤 동작을 하고 있다가도 곧바로 킥이 나올 수 있어야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정말 잘하는 선수들 보면 준비동작이 없다시피 하다. (무에타이는 킥을 차기 위한 거리가 필요해서 선수들 간 자신이 좋아하는 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수싸움도 치열하다.)


킥의 메커니즘을 이해했고 준비자세도 최소화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역시 몸의 힘을 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체육관에 가 보면 온몸의 힘을 다 써서 킥을 차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킥을 찰 때 정확히 몸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깨달아서 그럴 수도 있는데 내 경험은 그와 정 반대였다. 무에타이를 배울 때 코치들이 계속 '릴랙스, 릴랙스, 브리드(숨 쉬어)~~'라고 하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머릿속에 '나는 킥을 제대로 찰 거야'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면 킥은 엇나가고 체력만 급격히 소모된다. 심호흡을 하면서 몸에 힘을 빼고 차면 오히려 더 큰 파워를 낼 수 있고 힘도 덜 든다. (이건 복싱도 마찬가지) 그래서 요즘은 수업을 들을 때 킥을 잘 차겠다는 생각보다는 몸에 힘을 뺀다는 그 생각 하나만 하면서 수업을 듣는다. 


온몸에 기합이 잔뜩 들어가서 시합을 하게 되면 금방 지친다. 처음에는 초사이언인 같았던 선수들도 이렇게 싸우다 보면 다음 라운드 가서 기진맥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호흡을 조절하고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고 간결하게 공격하는 선수가 이길 확률이 높다. 


내가 이걸, 조금만 일찍 깨달았다면...


무에타이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도 이 교훈은 적용된다. 내가 100% 풀파워로 회사생활을 하다가 지금 이렇게 지쳐서 퇴사를 했고 아마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주오남이 김모미에게 한 것처럼 '아이시떼루!!!'라고 외치며 100% 전력으로 애정을 표현하면 처음에는 통할 수는 있어도 오래가지 못한다. 


9년 전, 푸켓에서 무에타이 시합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온몸이 빳빳하게 경직될 정도로 긴장한 나는 1라운드가 끝나고 과호흡이 와서 2라운드 시작 때 시합을 포기했다. 몇 대 맞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다만 너무 긴장해서 숨을 쉬지 못하겠더라. 몸에 힘을 빼고, 숨을 고르며 시합을 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회사생활을 하다가 번아웃이 온 것도, 치앙마이에 와서 공황발작이 온 것도 몸에 힘 좀 빼라는 뇌의 경고신호였겠지.


무에타이라니... 너무 생소한 주제라 이 글을 재밌게 보시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무에타이뿐만 아니라 적어도 입식 격투기 운동은 몸에 힘을 빼면 더 잘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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