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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05. 2023

공황발작 후 중간점검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 도착 5일 차에 공황발작 증상을 겪고 13일이 흘렀다.


얼마 전 어떤 정신과 의사의 유튜브 영상을 보니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원인과 상황은 다음과 같다고 연구되었다고 한다.


원인

수면박탈

알코올

카페인


상황

분리(이별)


뭐에 한 대 맞은 느낌이었는데, 위의 원인과 상황에 내가 정확히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원인 세 가지는 태국에 오기 전부터도 지속적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상황의 경우는 내가 퇴사를 하고 가족을 떠나 태국 치앙마이라는 낯선 곳에 온 것이 분리(이별)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발작이 일어난 당일, 공황발작에 술과 카페인이 매우 좋지 않다는 정보를 찾아 그 이후로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고 카페인은 오전에 한 잔 정도만 마시는 중이다. (원래는 하루 3~4잔도 거뜬)


10여 년간 알코올에 의존증상이 있었고 여기서 벗어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발작의 상황이 죽음의 공포를 느낀, 최악의 경험이었기에 덕분에 술도 마시지 않고 있다. 그런 충격적인 상황을 다시 겪느니 술을 안 마시는 것이 낫다. 물론 아예 끊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혼자는 마시지 않겠노라고 다짐했고 아직까지는 잘 지키는 중이다.


발작이 일어나고 3~4일간은 매일 울었다. 조금만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와도 울었다. 길을 걷다가도 울었다. 발작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지만 불안감을 느끼면 손과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한 느낌이 올라왔다. 불안이라는 것이 이렇게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니 더 무서웠다.


이때 추가적으로 도움이 된 행동이 있는데 첫 번째는 나를 지지해 주는 친구와의 대화였고 두 번째로는 운동이었으며 세 번째로는 글쓰기였다. 친구의 경우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발작이 있고 다음날, 또 공포감에 사로잡혀있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날에만 두 시간을 나와 대화해 준 후 지금까지 거의 매일 내 안부를 묻는다. 내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지해 준다. 본인도 이전에 받았던 도움을 나에게 되돌려주는 것뿐이라고, 별 일 아니라고 말하는데 나에게는 별 일이고 큰 일이다. 아무리 감정이 올라와도 친구와 대화를 시작하고 10분쯤 지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한다. 이 친구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 것은 불과 한 달 전 일인데 하필 이렇게 힘든 시기에 너무도 큰 위안을 주었다. 내가 친구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갚겠노라, 이런 마음으로 지금은 친구의 호의와 애정, 관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운동은, 그냥 죽어라 한다. 하루 2만 보쯤 걷고 1시간은 무에타이 수업을 듣는다. 1년여간 운동을 멀리하고, 알코올 의존증상까지 있던 37세 여성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운동량이나 '그냥 한다.' 운동을 하네 마네 생각을 할 틈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불안감이 올라오고 언제 또 공황발작이 발생할지 모르는 일이다. 걷거나 무에타이를 하면 힘들어서 딴생각을 못한다. 운동이 끝난 이후에도 온몸이 아프기에... 딴생각이 올라올 틈을 막아준다. (좋은... 거겠지...)


글쓰기의 경우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글의 주제는 내 감정일 수밖에 없고, 감정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각도 정리된다. 이를테면 얼마 전 서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전우주적인 이벤트'인데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는 이 이벤트에 당첨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글을 썼다. 내가 이 글을 써놓고 스스로 위로받았다.


이제 남은 건 숙면인데, 이렇게 운동을 하고 친구와 대화하고 글을 써도 아직 숙면은 정복하지 못해서 매일 두통에 시달린다. 공황발작의 3대 원인 중 하나가 수면이라고 하니 오늘부터는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침대 멀리 두고 자려고 한다. 아마도 수면까지 괜찮아진다면 정말 빠른 시간에 증상이 호전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안정적이지 않고 얼음판 위를 걷는 것만 같다. 언제 다시 불안이 터져 나오고 발작이 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게 내가 회사생활을 할 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다행히 지금은 온전히 나만 돌볼 수 있는 상황이라 스스로 불안/우울/공황발작의 원인을 공부해서 내 몸에 적용시키는 중이고 아직까지는 효과가 괜찮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런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몸이 굉장히 좋은 피트니스 인플루언서분의 게시물이었는데 한 끼에 아주 적은 식사량을 적어놓고는 '이걸로도 충분~'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고문에 가까운 수준의 적은 양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사진 속 완벽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것밖에 먹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으리라. 그분이 받을 엄청난 양의 스트레스가 상상되어서 마음이 짠했다. 하지만 비단 피트니스 인플루언서뿐이겠는가. 퇴사 전 회사생활을 하던 나도 나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세우며 더 많은 지식과 이로 인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각종 '스킬'에 매달렸었다. 공황발작을 겪어보니 이 모든 게 다 부질없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나 스스로를 환자라고 생각하고 매우 열심히 챙겨주고 있다. 일평생 처음 있는 일이다.


날씨가 좋으니 빨래가 잘 마르더라.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에 나 역시도 이렇게 잘 말라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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