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엄마가 되었다
임신 33주 5일. 1.8kg의 도아가 세상에 나왔다.
33주 3일, 조기 진통으로 입원한 지 19일째 되던 날이었다. 조산방지제 덕분에 자궁 수축이 제법 잘 잡혀, “이러다 퇴원해서 만삭까지 가는 거 아니야?”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오랜만에 평화로운 하루였다.
그날 밤 10시 반쯤, 남편을 집에 보낸 후 자려 누웠을 때였다. 무언가 ‘톡’ 하고 터지는 느낌이 들더니, 일어서자마자 따끈한 무언가가 어찌할 새도 없이 쏟아져내렸다. 배에 힘이 들어갈까 봐 눈물도 꾹꾹 눌러 삼킨 힘겨운 밤이었다.
33주 4일. 담당 교수님이 “양수가 터진 이상 감염 위험이 크다”며, 바로 분만을 진행하자고 했다. 하루라도 더 품어주지 못한 미안함에 참았던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아기를 맡게 될 소아과 교수님이 인사차 다녀가고, 진통실로 옮겨졌다. 마취과 교수님이 오셔서 척추에 무통 주사관을 연결해 주셨다. 정신없이 분만 준비가 이어졌지만, 하루 종일 진통만 계속되고 경부가 열리지 않았다. 결국 그대로 하룻밤이 지나갔다.
33주 5일, 새벽 6시. 유도 분만을 다시 시작했지만, 여전히 진행은 더뎠다. 또 하루가 넘어가나 싶던 오후 5시, 이제 가능하겠다며 갑작스레 분만실로 옮겨졌다. 힘만 잘 주면 아기가 금방 나올 거라 했지만, 몸이 좀처럼 따라주질 않았다. 오랜 금식과 긴 입원 생활로 체력이 바닥이었다.
오후 9시가 넘어간 시각.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아주 힘겹게, 1.8kg의 작은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출산 다음 날까지도 그저 조금 일찍, 작게 태어난 아기라고 생각했다. 좀 더 품지 못한 서러움도 잠시, 아기를 볼 생각에 잔뜩 설렜다. 당분간 인큐베이터 신세는 지겠지만 곧 건강하게 만나게 될 거라 믿었다. 소아과 교수님이 면담실로 우리 부부를 부르기 전까지는.
난생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어안이 벙벙했고, 말문이 막혔다. 병원에서도, 그리고 아기 없이 들어간 조리원에서도, 나와 남편은 끝없이 울었다. 흐르는 눈물을 모으면 바다가 될 것만 같았다.
대체 우리가 무슨 욕심을 얼마나 부렸다고 이런 시련이 반복되는 걸까. 우리 부부에게 처음 찾아왔던 아기는 임신 7개월 무렵, 많이 아픈 채로 하늘나라에 보내주어야 했다. 다시는 같은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왜 또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닥친 걸까.
아이는 신생아중환자실에서 50여 일간의 보살핌을 받은 뒤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를 우리 품에 안기까지, ‘강해지자’ 다짐했다가도 수없이 무너져내리는, 모래성 같은 시간들이었다.
아이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살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도아야, 너의 삶 모든 순간에 사랑이 가득하길. 그리고 그중 가장 깊고 넓은 사랑을 주는 건, 언제나 너 자신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