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적응해야 하는 또 다른 나.
적응할 수 없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나로부터의 모순.
내게 익숙함을 주는 모든 것들은 사라졌고
내가 자청하여 없애기를 선택했었다.
카우치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며 보는 영화도 좋았다.
열면 정작 먹을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냉장고도 좋았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던 책들도 좋았다.
내가 마신 와인과 위스키 병들을 놓은 구석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푹신하고 포근한 침대가 제일 좋았다.
사각사각거리는 겨울이불의 소리와
가끔 따끔한 거위 깃털에 찔리더라도, 그것이 좋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켜 운동복을 입고
문 앞을 나서면 공원이었던 것도 좋았다.
열한 시 반부터 두 시까지는 나만의 호수였으니까.
새로운 것들을 사고 헌것들을 버리는 일도 좋았다.
가끔 해 먹는다고 한껏 장을 보아선
결국은 먹지도 못하고 다 버렸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가 모두 좋았었다.
끊임없이 구해줘를 외치던 내게
포근하고 아늑하던 그곳은
2년의 달콤함이 녹아버릴 만했다.
별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래. 이제 이사 갈 때도 되었어.
이 정도면 오래 살았고 거기도 좋던데.
하지만 생각보다 이상과 현실은 가깝지 않았고
나는 결국 분리가 되고 말았고
그것은 곧바로 내게 향수병을 안겨주었다.
하나하나 익숙한 것들에
내 손이 닿았던 것들에게 미련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직접 만든 것.
저건 내가 진짜 힘들게 공수해 온 것.
아 이것들은 내가 테라로사를 갔던 날 사 온 것들.
저것들은 한때 빠져있던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
조금 답답하면 운동화를 신고 바로 나갔고
많이 답답하면 가볍게 채비를 해 한강을 갔다.
갈 때는 자전거를 이용하고
올 때는 택시를 이용했던 날도 있었다.
택시 기사님께서 나를 힐끔힐끔 보시며
나쁜 생각은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었다.
새벽 4시에 한강 다리 중간에서
택시를 잡은 내가 잘못한 것 같았다.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남지만
한숨 한 번에 사라질 신기루 같은 추억뿐이다.
그때 들었던 음악을 지금 듣는다 해서 그때가 아니고
그때 입었던 옷을 입어본들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돌아가고 싶다.
모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