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의 관계

by WH Ann


끊임없는 대물림이 가능한

가족으로 칭하는 분류 중 하나인 직계가족.





일부러 안 보고 에피소드를 쌓아두었던

다큐와 시사 프로그램들에서

매번 그렇듯 안 좋은 소식들만 다루었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회자되는 가출 청소년에

지루하다 싶었지만 세상에 SNS가 더해지며

나 또한 한 세대를 건너뛰었음을 현실적으로 깨달았다.



장기화되는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의 만남이 많아졌던 때

친구들은 믿을 수 없고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인연들만이

오로지 자신을 이해하며 위로해 준다고 했던

자신들의 딸아이를 질책하고 비난하며

그 위로받는 존재로부터 멀어지게끔만 한 그들.

그것은 나를 위함일까 너를 위함일까.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호랑이가 와서 물어간다는

말을 들으며 눈물을 뚝 그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요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흔치도 않으며

이런 말을 들었다 한들 휴대폰으로 호랑이를

검색할 아이들만 존재하는 시대가 지금이다.





나는 자식이 없으니 부모의 입장이 아니고

가족 중 직계가족만이 존재하니

자식의 입장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흡연자라면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 지금부터 끊어라라고 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까?

혹 흡연자가 아니라면 운동은 건강에 이로우니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운동을 하라 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까?





나무에 나이테가 하나씩 새겨지듯

내 나이가 하나씩 먹어간다.

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강산이 변하고

세상이 변해가며 세상도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어가는 세상 속의 우리들도 변해간다.





중학생인 딸아이가 온라인상 성인 남성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보다

이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는 대상이

온라인상의 사람들이라는 것과

자아가 성장하며 자립되고 가치관의 형성과

하나의 인격체로써 형태를 만들어내 가는 이 시기에

또 다른 성격의 방황을 겪고 있다는 게

안타까운 주제였다.





무조건 안된다라고만 배운 아이는

명령어를 입력해야만 활성화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게 된다.

그러면 그 부모는 아이에게

"넌 왜 너의 생각이 없니."

"왜 넌 네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몰라?"

"그냥 우리 애는 아직 철이 없어요."

흔히, 라고 말하더라.



in put이 있기에 out put이 있고

과정이 있기에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이걸 모른다면 끔찍한 대물림은

한줄기 썩은 동아줄이 끊어지지도 않은 채로

길게 뻗어있을 수밖에 없다.



어떠한 부모가

어떠한 자식이

잘했고 잘못했는 잘잘못을 가릴 수는 없다.

in put, out put이 있으니.





가출한 지 두어 달이 지나서야 찾아낸 딸아이는

너무나도 낯선 사람이 되어 부모와의 면접을 거부했다.

아마 그 아이는 마음이 많이 닳아 해져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내가 필요할 땐 대꾸도 않던 세상이

내가 이미 만신창이가 되자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다.

세상을 열심히 찾던 나라는 주체의 입장에선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맷돌을 못 돌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힘들었다고 울음을 터트리기보단

소리 내어 울고불고했던 자신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이미 멀리 갔을 것이다.





"잘못했다."라는 것은 저지르고 내뱉으면

용서가 되는 한마디가 아니다.

그 말 하나로 너는 다소 무게가 가벼워질지 몰라도

나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보다 초과가 될지언정 가벼워질 수가 없다.

여러 번의 사과는 심지어 진심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차피 또 그러고 또 사과할 거 그냥 말이나 말지.’

왜냐?

그건 이기적인 사과이기 때문이란 걸 나는 알지만

너는 모르기 때문에.



"내가 너 힘들 때 못 알아봐 줘서 미안해. 잘못했어."

“ㅇㅇ”



하나의 메모리로 회로에 저장되어

이 고정관념을 바꾸기란 조금 어렵다.





그냥 어려울 땐

배려와 존중을 떠올린다.

내가 과연 너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는지.

너가 과연 나를 배려하고 존중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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