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술을 했어?"
"고3 입시 때 친구 따라 미술 학원을
한 달, 두 달 그렇게 다니다가 미대를 가게 됐지.
난 대학 갈 생각도 없었고,
미술도 그다지 재밌지 않았어."
"그럼 미술 안 했으면 뭐 하고 싶었어?"
"난 음악이 하고 싶었어. 음악을 좋아했지."
"악보 못 보지 않아?"
"응. 악보 못 보지.
그때는 귀에 계속 음악이 들리고 그랬었어."
순전히 그림으로 미대에 합격한 그는
미술이 쉬워 재미없었다고 말했다.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그는
내가 아는 한, 금관악기를 제외한 모든 악기는
다룰 줄 안다.
미술적으로 개인 전시회도 했지만
음악적으로 국립극장에서 연주도 했고
나의 눈에 그는
예술을 사랑하는 예술의 신 같았지만
그가 표현하는 자신은
그저 길가에 지나가는 행인1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예체능에 재능이 뛰어났고,
특히 미술과 음악 부분에서 탐내하는 어린아이였다.
어렸을 적 나는 그림을 그리면
당연히 상을 준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에는
당연히 잘한다라는 소리를 듣는 거라 생각했다.
그저 그냥 당연한 거라고만 생각했다.
아 이게 재능이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반대가 심했고,
쇼트트렉을 더 배우고 싶을 때쯤 수업이 끝났고,
캐나다 연수가 가고 싶었지만
너무 어리다며 거절당했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그때 노래를 놓지 않았더라면
뭔가 바뀌어져 있었을까.
집에서 심하게 반대를 하더라도
내가 악착같이 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달라져 있었을까.
굳이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재능을 알아주고 키워줬더라면
그때 당시의 상상하던 미래인
지금의 내 모습이 달라져 있었을까.
"엄마. 나는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을 거 같아."
초등학교 2학년, 고작 9살이었던 그녀가 했던 말.
그녀는 공부를 했고, 열심히 했고 월등히 뛰어났다.
의대를 목표로 했지만
그녀에게 수능은 긴장과 예민의 연속이었고
본인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열심히 했고,
2020년 코로나19가 또 그녀를 막았다.
천재성.
그것은 어쩌면 모두가 하나 이상은
다 가지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정의하는 게 아닐까.
재능 있는 것과 천재인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인간은 무한한 동물이니까.
현시대에 바보 같다는 짓들과 이론들이
미래에 빛을 발하듯
숨겨져 있어 보이지 않는 것,
그게 천재성이고
천재성과 잠재 능력은
정말 한 끗 차이가 아닐까.
그건 비단 어린 시절에만 국한되는 건 아닐 거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자랄지가 궁금하다고 했던
누군가가 생각난다.
아쉽게도 나에게 그런 능력은 없나 보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여 설레지 않는다.
미래를 꿈꾸며 얼굴에 홍조를 띠며
미소를 짓던 책상 위 소녀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과 달, 달무리를 보며
뭉게뭉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는데
현실에 적응하라는 걸까.
지금은 별들도 보기 힘들다.
더 큰 망원경으로 달을 보면
떡방아를 찧는 토끼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에 부풀었던
20여 년 전 나와 그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