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썸머 신 Jul 22. 2020

동네 인도 엄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 내어 건네는 '안녕' 이 한마디

  
비 오는 수요일 아침.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골목길을 지나오는데 이 근처에 사는 인도 엄마와 아이 생각이 났다.

그 엄마를 처음 만났던 건 작년 여름, 동네 놀이터에서였다. 북적거리는 엄마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인도인.

그녀는 갓 두 돌을 넘긴 듯한 남자아이를 조용히 따라다니며 놀아주고 있었다. 자신과 아이를 힐끔힐끔 스캔하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듯 조심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따뜻한 미소가 얼굴 전체에 깊이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 후로 그들은 내 시야에 자주 포착되었다.
놀이터에서 보고, 차 타고 지나가면서 보고, 근처 대학 캠퍼스 산책하면서 보고, 둘째 어린이집 골목에서 보고, 보고, 보고 또 보고.

이쯤 되면 하늘이 내려 준 인연인가 싶을 정도로 많이도 마주쳤다. 그런데 볼 때마다 항상 그녀와 아이 둘 뿐이었다. 아빠는 어디 갔지? 왜 한국에 왔을까? 점점 그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놀이터에서 그녀와 아이를 다시 마주쳤다. 여전히 둘 뿐인 그들은 외딴섬처럼 주변과의 어떠한 교류도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외국인이어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주진 않았다.

그냥 아는척하는 눈인사나 가벼운 인사말이라도 그 엄마에겐 좀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놀이터에 보는 눈이 워낙 많아 'Hi'라는 이 한마디를 내뱉는 것이 내심 민망했다. 그래도 이렇게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는 것은 유죄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저기... hi"

그녀는 나의 도발에 흠칫하며 눈빛이 흔들렸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hi'라고 화답해주었다. 마치 오랫동안 말을 걸어 줄 누군가를 기다려왔던 것처럼 금방 마음을 열고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남편은 근처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 연구실에 출퇴근하는 연구원이고 그녀도 같은 전공으로 공부하다가 지금은 육아에 전념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는 우리 둘째와 동갑인 3살이고 둘째 어린이집 근처 빌라에 살고 있었다. 한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고 언제 인도로 돌아갈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육아를 잠시라도 도와줄 손길도 없어서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인도는 원래 아이를 기관에 맡기기보다는 어느 정도 나이까지는 엄마가 전담해서 키우는 게 당연한 문화라서 자기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국 땅에서 이방인 엄마로, 이방인 아이를 키우는 게 내 눈엔 무척 외로워 보였다. 무엇보다 우리 둘째와 동갑인 그 인도 아이가 마음에 쓰였다. 심심하지 않을까?

그 당시 둘째는 언어발달이 거의 수직 상승하고 움직임도 왕성해지고 또래들과도 소통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둘째의 경우를 비추어 봤을 때 엄마랑만 시간을 보내는 게 슬슬 심심해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오지랖 넓은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친구가 필요할 때 연락하라는 기약 없는 멘트와 함께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 후 우리는 카톡으로 종종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우연히 길을 가다 마주치면 정말 반갑고 좋은 사이. 하지만 약속을 잡고 따로 만나기엔 국적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까 조심스러운 사이. 나도 인도 사람을 겪어 본 적이 없는지라 혹시나 실수를 하게 될까 봐 적정한 거리를 두고 대했다.

오랫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고 코로나가 터지고 한참 뒤에야 인도 엄마 걱정이 되었다.

'잘 지내고 있을까' 이 생각을 하던 찰나에 공교롭게 둘째 어린이집에서 나오다 그녀와 마주쳤다.

안 그래도 잘 지내나 궁금했다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인도 엄마의 옆에는 아이가 훌쩍 자란 모습으로 조스바를 먹고 있었다. 자기 또래인 둘째 딸아이를 의식하면서 엄마 다리 뒤에 숨어 몸을 배배 꼬고 빨리 집에 가자며 재촉한다.

요새 아이에게 친구가 필요한 것 같아서 고민이라며 어린이집에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있는지, 비용은 얼마가 드는지 외국인 아이도 있는지 물어봤다. 아이가 커가니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일에 한계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런 인도 엄마가 안쓰러워 내가 둘째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과 구청에 물어보고 꼭 연락 주겠노라 약속했다.

바로 다음날 원장 선생님께 물어보니 지금 4세는 인원이 꽉 차서 더는 아이를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고 외국인 아이가 입소하게 되면 어린이집에서 의무적으로 다문화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고충도 얘기해주셨다. 아, 이게 어린이집 입장에서는 언어 소통의 문제는 둘째치고 부수적인 업무와 서류 작업이 추가되는 복잡한 문제구나.

우리 지역 구청 직원에게 물어보니 외국인이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는 있지만 대한민국 국적이 없으면 정부지원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듣기론 그 인도 엄마는 한국 국적이 아닌 영주권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매달 50만 원 정도 되는 전액을 자비로 부담하면서 어린이집을 보내야 한다는 건가. 구청 담당 직원이 친절하게 구내에 입소 가능한 어린이집 리스트를 보내주었지만 한숨이 계속 나왔다.

이 비보를 인도 엄마에게 전해야 하다니.. 무거운 마음으로 내가 알아낸 정보를 그녀에게 자세하게 일러 주었다. 그녀는 알아봐 줘서 정말 고맙다며 남편과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카톡이 왔다.

올해 9월에 인도로 돌아가게 됐다고. 혹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 내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아이 초등학교도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고 말했던 그녀인데 인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는 말에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가슴이 먹먹했다.

이 골목을 지나면서 인도 엄마를 생각한다.
아이손을 잡고 멀찌기 걸어오던 익숙한 그 모습.

"잘 지내고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자는 척하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