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가 뭐야?

... 에필로그

by 무위




구독자 2, 라이킷 5... 이제 막 시작한 썰렁한 내 브런치... <위암의 위안> 2회 차를 발행했을 때 대학 후배가 댓글을 달았다.

"'있을 법한, 있었을 법한' 얘기를 하기로 한 건가요? 웹소설 읽은 듯... 좋아요 꾹꾹"

그녀의 물음에 답글을 달았다.

"기록에 의존한, 기억의 왜곡을 최소화한 이야기란 점이 장점이지~"라고.


무위록


내 기록은 진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일까? 기록은 항암 치료가 끝나는 시점부터 가능했다. 그때라도 써놓은 게 다행이리고 했다가도 그때 썼기 때문에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다. 중간중간 자잘한 기억의 오류들은 아내가 바로 잡아 주기도 했다.


일기... 정제되지 않는 언어로 쓴 야생 상태의 나

에세이... 일기의 언어를 정제하여 공개적으로 확장한 논픽션

소설... 자기 은밀성을 심화하기 위해 픽션으로 위장한 글쓰기


모두 '나'의 이야기다. 결국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를 받아썼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일기에서 시작하여 에세이로 정제되고 소설로 확장한다. 소설을 허구의 문학이라고 학교에서 배웠고 교사가 된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수 십 년간 읽고 쓰고 가르쳐 보니 소설도 결국 자기 이야기더라.


소설적 기법이나 구성, 장치들을 마련해서 쓴 것이 아니라서 소설로 부르기는 언감생심이고, 에세이로 부르기에는 약간 디테일한 맛이 있어서 "에라이 뻥쟁이, 소설 쓰고 있네"란 소리를 들을 것 같기도 하고, 꼭 넣고는 싶고 잘 깎고 다듬기엔 귀찮아서 에라 모르겠다 내 일기를 직접 인용하기도 했다.


자기 글을 자기가 인용한다고? 물론 가능하지. 문단 사이에 시간성이 존재한다. 인용된 그때의 나와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과거의 나는 현재형으로 말하고 현재의 나는 과거형으로 말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대립하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한다. 나름 재미있고 의미있는 시도였다.


결론은 이도저도 아닌 정체성이 불분명한 글이 되고 말았다. 아무렴 어때, 세련미보다 어떻게든 나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야 했고 전투를 치르듯 진흙탕을 굴렀다. 때론 정체성이 불분명한 게 진짜 정체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록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물이란 건 말할 수 있다. 감정과 관념어를 배제하려다 보니 무겁고 차가운 글이 되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위암의 위안>은 시작부터 나를 위한 글이었다. 잊고 비워나가는 시원함 때문에 순간순간을 기록하는 습관이 붙었다. 끝내고 나니 인생의 한 페이지가 잘 넘어간 느낌이다. 잘려나간 내 위장은 영원히 재생되지 않겠지만 지나간 기억은 간간히 재생되어 나를 괴롭히기도 하고 또 위로하기도 할 것이다.


<위암의 위안>은 분절된 문장들의 집합이다. 나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문장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 문장들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끝내 손잡지 못한다. 각자도생하는 문장들 중에는 생각의 밀도를 못이겨 상처투성이로 태어난 괜찮은 녀석들도 간혹 있다. 이렇게 건져진 한 녀석만 좋아해 준다면 바랄 게 없겠다.


'무위록(나의 일기)'을 찬찬히 다시 읽었다. 반복 재생되어 이젠 노래가 돼버린 무거운 문장들과 결별을 고한다. 자, 이제 진짜 나의 이야기, 나의 소설을 써야 할 시간이다.


브런치 북 책 한 권을 완성했는데 아무도 찾아와 주는 이 없는 쓸쓸한 내 방은 어쩐다지?

구독, 구독, 구독… 구걸, 구걸, 구걸… 구, 구… 독…

그래도 브런치 작가되고 한 달 만에 책 한 권 완성한 사람있음 나와보라 그래!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