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위 Feb 09. 2024

직관의 길로 뚜벅뚜벅 걷기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 없지!"라든가, "우리는 혼자가 아니란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와 같은 문장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런 글을 마주치면 몹시 설렌다. 단언적이기 때문이다. 시나 소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단정적 표현들 때문이다. 삶의 무게에 주눅 든 개인들은 감히 할 수 없는 통찰적 선언들을 작가들은 앞뒤 안 가리고 과감하게 내던진다.

사회는 '담론적'이어야 하고, 삶은 '단언적'이어야 한다.
- 김정운 <바닷가 작업실엣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여보, 카페만 즐비한 우리 동네 가로수 거리를 책방 문화거리로 만들어 버리자."

"당신이 가진 넓이와 내가 가진 깊이로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선한 영향력을 나누면서 늙어가자." 이런 말들을 주고 받을 때면 삶이 충만해짐을 느낀다. 우리 부부의 언어는 확신적이다. 우리는 삶의 무게에 짓눌리며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기에 확신적 행위의 언어로 현재를 살고 있다.  

"~한 것 같아",  "어쩌면 ~일지도 몰라"라고 자주 말하는 자신감 없는 내 언어를 아내의 언어가 덮어버린다고 해야 정확하다.


우리 동네 가로수길 카페거리 커페 '밀집' 앞을 지나면 아내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저 집 5년 안에 내가 인수해서 동네 책방 만들 거야. 나는 하부루타 수업하고, 작가들 불러서 북토크 열거야. 당신은 빵 만들고 커피 팔아! 아, 그리고 첫 북토크 초청 작가는 당신이 될 거야!"


나는 처음 들을 땐 저 집 비쌀 걸? 두 번째 들었을 땐 우리가 살 돈이 있다고 해도 주인이 집을 안 내놓을 걸. 세 번째 들었을 땐 나 힘들어서 빵 못만들어. 하아, 내가 작가 북토크를 한다고...





내가 고이케 히로시 <2억 빚을 진 내게 우주님이 가르쳐준 운이 풀리는 말버릇>을 읽고 난 뒤 '밀집' 앞을 지나다가 아내는 또 똑같은 말을 했다. 나는 입 닫고, 아내 얼굴 한 번 쳐다보고, 우주의 기운을 담은 진지한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이 책의 힘이다.


고이케 히로시의 삶의 방식이 아내와 똑같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긍정에너지를 포기하지 않는 아내의 수혜를 입고 살아온 사람이다. 이것은 나의 복이다. 나의 부정메시지를 상쇄시켜 끝내는 아내에게 굴복 당하고 마는 힘의 실체를 이제는 알겠다.




내게는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이 하나 있다. 매사에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정하고 말하는 것. 그렇게 하면 대부분의 경우 예상한 최악의 상황은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 그 순간에 잠시 찾아온 안도감을 즐기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좋은 상황이 오지도 않는다. 최악의 상황이나 최선의 상황이나 찾아올 확률이 희박하기는 매 한 가지다.


이왕이면 최선의 상황을 가정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실망? 그것도 잠시일 뿐일 테니까. 고이케 히로시는 긍정의 메시지 표현이 주는 에너지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 반복성이 최면을 건다. 기적은 최면에 걸릴 지경이 되어야 찾아온다는 그럴 듯한 논리다. '최면'이란 단어를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실행'이라는 말로 대치하면 진리가 되고 현실이 된다. 이것도 나름대로 해석해서 읽으니, 어느 순간 긍정으로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 논지의 핵심은 '의심하지 말라'라는 실천적 강령이다. '기적'의 다른 이름은 '직관이 시키는 구체적 실천 노력의 퇴적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과의 조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