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위 Feb 11. 2024

지겨워, 지겨워 죽겠어

삶의 분노(1)




다들 여유가 없어서 그래요. 여유가 없으면 뭐든 겁부터 나잖아요.

이곳을 떠나려는 사람이나, 남으려는 사람이나, 어쨌든 여기 사는 동안엔 안고, 견디고,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의 감정을 새삼 상기하게 된 것입니다. 오래전 어머니로 하여금 집 앞에 서서 멍하니 집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던 그 조마조마한 마음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여기 사는 한 그런 마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누군가에게 옮아가고 번지며, 마침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중에서


지겨워, 지겨워 죽겠어. 지겹다는 말과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그 시절의 부모와, 그 말을 따라하며 나는, 삶은 지겨운 것을 견디며 살아내야 하는 무엇 쯤으로 체화하며 자라났다. 내가 사는 동네들은 모두 후졌다. 철거민으로 쫓겨난 것만 두 군 데. 막노동꾼과 술판, 싸움과 살인이 일어났으며, 서로를 저주했고, 살아남기 위해 전쟁처럼 하루하루를 버텼냈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삶을 버거워 했고, 아아들은 방치 되었다. 그때는 모두 그렇게 살았다고, 그런 시절이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은 동네와 삶이 분명히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만 몰랐다. 못 봤을 뿐이다. 추억보다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내 어렸을 적 동네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호시탐탐 탈출을 도모했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는 자각만 선명했다.




사는 게 숨이 가쁠 정도로 바빴던 시절, 골목과 빈집이 무지하게 많던 그 동네에서 아이들이 부모의 손길도 받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커가던 시절의 이야기들은 이제 시어머니에게는 추억이 되었다. 웃으면서 그저 가볍게, 그리고 따듯하게 돌아볼 수 있는. 그러나 미라는 어머니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어머니의 추억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경멸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좋아했기 때문에 경멸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나 누구에게나 견딜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어머니가 아닌가? 그 시절에 아들이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도 모르고 꼬마김밥이나 추억하는 어머니라니.
- 김인숙 <벚꽃의 우주> 중에서


내가 다시 이 동네로 던져진 이유는 뭘까? 교직 첫 발령지 동네에 20년이 지나서 작년에 다시 발령을 받아오게 되었다. 20여년 전 기억이 소환된다. 중학교 1학년 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집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어울려 잠을 잤다. 빌라를 돌며 아이들을 깨우고 다니는 게 내 일과의 시작이었다.


여학생들이 노래방에서 집단난투극을 벌여 고막이 찢어져 친구를 장애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픈 아이를 집으로 보내지 않았다(집에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각목을 들고 교무실로 찾아와 난동을 부렸고,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담임에게 전화해서 욕을 했다. 피해의식 가득한 자들의 술주정(이런 점에서 내게, 집과 학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받기는 이제 껌이라며 견뎠다. 하지만 당장 찾아가 소리치고 싶었다. 이제 지겹다고, 그만 좀 하라고.


학교 주변에는 러브모텔이 즐비했다. 어른들은 돈벌이에 미쳤고 아이들은 방치되고 버려졌다. 그 학교에서 기피 업무는 학적(전출입 학생 처리 업무)이었는데, 일 년에 수 십 명이 전학오고 전학을 나갔다. 부모들은 이 동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는 다시 돌아왔다. 가난과 불행의 굴레는 천형처럼 이들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녔다.


초임시절 나는, 아이들만큼이나 아무것도 몰랐고 열정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내가 살았던 그 후미진 동네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던 어린 '나'와 동일시하면서 한 녀석이라도 살려내야 한다는 거룩한 숙명을 완수하느라 분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한없이 무력했다. 그리고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이 동네는 20년 전과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얼마 전 아내에게 혼잣말로 투덜댔다. 지금 내가 이곳에 던져진 것은 내 유년 시절과 화해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신의 엄중한 호통처럼 느껴진다. 최근, 김인숙의 <벚꽃의 우주>, 김혜진의 <불과 나의 자서전> 소설을 읽고, 영화 <도희야>, <아이>를  보았다. 우연히 보인 것인지, 찾아 본 것인지 모르겠다. 가난과 폭력, 그리고 통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방인의 눈에는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방인으로 보인다. 나도 당신들도 모두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 하지만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자들. 이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떠날 생각을 하고 있고,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며 선을 긋는다. 그럴수록 내 유년의 동네들의 기억이 선명해진다. 내 유년의 수많은 소설속 '남일동'들과 지금 생활하고 있는 이 동네는 너무나 닮았다. 나는 '남일동'들에서 한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선긋기는 착각이었다. 방법이 없다. 누추하고 방치된 삶을 피할 수 없다면, 모조리 끌어안고 사랑할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상생의 트라이앵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