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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Nov 14. 2023

넌 남자니? 여자니?




'언니!'

경북 사투리 특유의 억양으로 초등학생 내내 누나를 '언니'라 불렀다. 엄마가 그렇게 가르쳐 준 것인지 어디선가 들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너는 남자애가 언니가 뭐니? 누나라고 해야지."라고 엄마는 가끔씩 고쳐줬지만, 나는 '언니'를 고집했다. 크면 다 알아서 누나라고 하겠거니 했는지 엄마는 내 이상한 성정체성의 호칭을 애써 수정하지 않았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언니'든 '누나'든 어색해서 어떤 것도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칭을 생략하고 본론부터 꺼내며 말했다. 호칭이 생략된 누이 부르는 시간이 꽤 길었다.


누나를 따라다니며 동네 여자아이들과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다. 추측컨데 여자아이들이 누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을 따라 하다가 입에 익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누나의 놀이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는 '질투의 호칭'이었을 것이다. 손놀림이 섬세한 내게 누나는 종이인형 오리기를 시켰다. 부역의 댓가로 인형옷을 하나씩 얻었다. 누나보다 내가 가진 종이인형 옷의 가짓수가 더 많았다. 내것을 잃어버리거나 남에게 절대로 주지 않는 꼼꼼욕심대마왕. 나는 공기놀이를 웬만한 여자애들보다 잘했다. 그러면서도 축구와 야구, 닭싸움, 딱지치기, 구슬치기, 오징어 놀이와 같은 남자아이들이 하는 호전적인 놀이에도 빠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 나는 참 신기한 놈이었다. 엄마 따라 여탕을 다니고, 여자 아이들과 대화하고 노는 것이 더 편했다. 성별과 나이를 초월한 나의 관계 스펙트럼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넌 남자니? 여자니?"

"너 혹시, 부모님 중 한 분이 외국인이시니?"

"보조개도 있네... 여자, 맞지?"

초등학생 시절,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성별부터 물었고, 국적도 가끔 물었다. 거울을 아무리 봐도 남자같이 생겼는데, 어른들 눈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씨익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열면 목소리로 성별을 맞출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사실, 변성기 전에는 목소리로도 못 맞췄을 것이다) 속으로 한번 맞춰 보실래요? 하며, 은밀한 수수께기 내기를 즐겼던 것 같다. 내가 묘한 중성적 외모를 가졌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신비로운 아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했다.




그러다가 위기의 시간이 찾아왔다. 남자중학교와 남자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은 나에게 조금 힘겨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남자들의 세계에 적응해야 했다. 싸움으로 서열을 가려야 했고, 강하게 보이려고 가면을 써야했다. 완벽한 수컷들만의 세계인 군대생활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근육을 키우려고 운동을 했고, 생활언어의 절반을 욕을 썪어가며 거칠게 말했다.(사실, 연기에 가까웠다) 어울지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아 늘 불편했다. 그나마 나에게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DNA 유산인 운동신경이 조금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고 잘 해서 그럭저럭 티나지 않게 남자들 사이에 낄 수 있었다. 이 시기는 진정한 내 모습으로 살지 못했다. 가끔씩 가면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여성성을 숨기려고 애를 썼고, 성격적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집단 내에 섞이기 위해서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대학도 여자들이 많은 학과를 다녔고, 여자의 비율이 훨씬 많은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나는 이런 나의 중성적 캐릭터가 마음에 쏙 든다. 남자들의 심리는 내가 남자니 당연히 잘 알고, 여자들의 심리는 그 어떤 남자들보다 더 잘 안다고 자부한다. 남자 친구보다 여자 친구들 사귀기가 더 편한 남자 인간. 아내는 나와 결혼한 이유를 '말이 잘 통해서'라고 했다.


남자는 만날 때마다 물었던 걸 또 물어 보지만, 여자의 첫 대화는 생활밀착형으로 매번 다르다. 남자는 자신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남 얘기를 많이 하지만 여자들은 자기 얘기한다. 그래서 남자들의 뒷담화는 날이 서있는 공격이고 여자들의 뒷담화는 풍자이다. 남자는 정치인을 욕하지만 여자는 연예인을 욕한다. 그래서 남자는 정치인을 칭찬하는 일이 좀처럼 없지만 여자는 연예인을 사랑하기도 한다. 남자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허풍떨지만 여자들은 자신의 얼마나 가련한지 공감받고 싶어한다. 남자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여자들은 자신의 말을 계획하고 상대방 말의 의미까지 곱씹는다. 나는 내가 관찰하고 체험한 것으로만 남녀의 차이를 백 개도 말 할 수 있다. 나는 세상 모든 엄마, 아내, 딸 편이다.




성역할은 사회화의 결과이다. 가끔씩 나를 아는 여성들은 나를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 남자보고 여성주의자라니. 이런 모순된 용어가 어디 있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휴머니스트'라고 우긴다. 나의 페미니즘적 성향은 너무 많은 권위를 누린 아버지 세대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했다. 아버지들은 권위의 무게를 내려놓고 가벼워져야 할 때가 되었다. 깊고, 부드럽고, 섬세한 사람이 살아남는 세상이 도래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여성성과 화해하게 되었을 즈음, '구스타프 카를 융'의 <기억 꿈 사상>과 <인간과 상징>을 만났다. 여성 속에는 '아니무스'라는 남성성이 들어 있고, 남성 안에는 '아니마'라는 여성성이 들어있다. 외적으로 발현된 성별에 맞도록 성역할이 강요되는 쪽으로 인간은 자라난다. 융은 남자든 여자든 자기 안에 들어 있는 반대 성적 성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조화로운 인간형이 완성된다고 봤다. 그의 책에서 큰 위안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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