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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둥바둥 김대리 Dec 23. 2021

KTX 보다 무궁화호가 좋아

돈을 모으려면 이정도는 해야지


내 주변의 친구가 모두 증발해 버렸다. 왕따가 되어버리는 걸까. 돈을 쓰지 않았으니, 이정도는 감내해야지. 예상한 결말이었잖아? 돈이 잔고에 쌓이는 것과는 별개로 나의 연락처의 친구들은 하나둘씩 정리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모든걸 얻을수 없는게 현실. 구두쇠 처럼 살고 절약하려면 사람을 만나면 안된다. 커피를 얻어먹어서도 안되고 사줘서는 안된다. 왕따는 감수해야 한다.




KTX보다 무궁화호 입석

이렇게 까지 살아야할까...



취직을 했지만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 애써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의무적인 효도일까. '가지 않으면 교통비를 절약할수 있을건데...' 라는 마음이 왠지 모르게 죄책감처럼 깊숙히 스며올라왔다. '내가 이정도로 구두쇠로 변해 버린걸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정도로 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싶었다. 1년에 고향에 내려가는 날은 설날, 추석, 결혼기념일 등 손에 꼽을 정도지만, 내려가는 돈이 아까웠다. 차라리 내려갈때 드는 교통비로 부모님께 용돈을 더 드리는게 훨씬 나을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죽 섭섭했나 보다. 취직하고 돈은 버는데 더 여유가 없어진듯한 아들의 모습에. 그리고 돈만 밝히는 그런 모습으로 비춰졌나 보다. 이야기 할때마다 내가 돈돈 거리니. 심한말로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취직하고나서 아들이 손절해버린 택이다. '더이상 부모님에게 손벌리는 경우가 없으니, 이만 안녕~!'이런 느낌일까.



'아들, 이번 추석에 내려오는 열차는 예매했니?' 미리 예매할수 있는 날을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전화가 왔다. 그래도 의도적으로 예매를 하지 않았다. 미리 예매하면 정상적인 가격에 열차를 타고 가야했기 때문이다. KTX는 언감생심이다. 무궁화호에 비해 2배 비싼 가격때문이다. KTX 한번 타고가는 비용으로 무궁화로 왕복이 가능한데 굳이 KTX를 타야하나. 그나마도 미리 무궁화호를 예매하면 앉아서 가는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좌석이 매진되면 현장에서 입석으로 더 싸게 갈수 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가 현장에서 입석으로 타고 내려갔다.



누군가는 꼭 그렇게 까지 해야하나 생각했으리라. 나의 동기중에 이 사실을 아는 몇몇은 궁색맞다고 생각을 했을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그게 좋았다. 돈을 모으는 기쁨이 다른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상쇄하고도 충분했다. 입석이 나쁜건 아니다. 고향까지 내려가는 그 길에 자기계발을 할 수 있으니까. 너무 긍정적인 사고 아닌가? 이어폰을 귀에 꼽고 영어공부를 해도 되고, 책을 한권 읽을수 있는 시간이었다. KTX 를 타면 2시간도 안되어 도착하지만 무궁화호를 타면 4시간이나 걸리니, 그 시간을 온전히 자기계발에 이용할수 있었다. 그게 참 좋았다. 게다가 입석이다. 나는 뭔가 공부를 할때 앉아서 하는것 보다 서서하는게 집중이 잘되었다. 잘되었다 싶었다. 입석이 나에게는 궁색맞은 행동이 아니라, 자기만족의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런 나의 절약정신은 생활 곧곧에서 나타났다. 주말에 나이트클럽에 같이 가자던 동기들의 유혹도 뿌리칠수 있었고, 주말에라도 맛있는것을 먹고 스트레스 풀러 가자는 유혹에도 회사 기숙사에 남아서 삼시세끼 회사에서 주는 급식으로 돈을 아꼈다. 그렇게 아낀 돈들은 나의 가계부에 기록으로 그대로 남았고, 남은 한해동안 목표한 금액을 모을수 있다는 뿌듯함에 힘든줄도 모르고 그렇게 지냈다.




회식후 택시?

술도 깰겸 걸어가볼까



회식날이었다. 모두가 폭탄주를 들이키고 그간 먹지 못했던 고기로 나의 위장을 기름칠 하였다. 그렇게 회식을 마치면 팀장님은 팀내 회식비로 사원들에게 택시타고 가라고 현금을 주는게 관례였다. 그렇게 나는 기숙사가 회식장소와 지척임에도 5만원권을 받았다. 5만원. 엄청나게 큰 돈이다. 택시를 타도 만원 안에서 끝나는데 무려 5만원을 받았다. 나는 이 돈을 모두 모으고 싶었다. 그래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데도 불구하고 기숙사 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곳까지 걸어가며 술도 깨고, 건강해지고, 돈도 모으고 일석삼조라고 생각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이 마냥 길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속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보고 계획하는 사고의 흐름을 돌리는 행위가 마냥 즐겁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고, 모레도 출근해야 하지만. 주말에 출근도 가끔 해야할지라도, 월급이 그렇다고 늘거나 진급이 빠르거나 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목표한 금액을 만들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이루어가는 그 과정이 너무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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