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만 수십 번, 경제관념있는 여자를 찾기위해
소개팅만 수십 번. 외모를 따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나의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는 하는 걸까. 거듭된 소개팅에 점점 지쳐갔다. 기준은 명확했다. 경제관념이 있는 사람. 그런데 어떻게 그걸 소개팅에서 판단할 수 있을까. 사실상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좋지만 그랬다간 십중팔구 애프터 신청 거절당할게 뻔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며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두세 번 만남을 거듭하고 조금 친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애 스타일을 물어보게 되고, 나는 결정타 질문을 넌지시 던진다. "데이트 통장 쓰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데이트는 힘들어
나 자신에게는 구두쇠처럼 혹독하게 살았지만, 미래의 여자를 만나는 데까지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잘못 만나서 결혼하면 폭망이다. 그렇기에 쓸 때는 써야 한다. 데이트에도 기본 예의라는게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만남에서 밥은 남자가 사고, 커피는 여자. 애프터로 이어진 두 번째 만남에서는 밥은 여자, 커피는 남자. 얼마나 아름답고 달달한 전개인가. 그렇다고 이런 루트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기본 예의가 없다고 말할 수없다. 각자 모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나만 돈을 쓰게 되는 상황에서 기분이 상하는 속 좁은 남자임에 틀림없다.
실제 소개팅을 수십 번 하다 보면 위의 정석 루트를 따르는 여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여자도 있었다. 처음 만나 비싼 밥을 사주었다. 점수를 따려면 이 정도 돈은 써야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커피 한잔 하러 가실래요?'라는 질문과 '네~그래요'라는 대답으로 이어진다. 자연스러운 소개팅 수순이다. 그리고 도착한 커피집. 여자가 갑자기 내 뒤로 온다. 그리고 '뭐 드실래요?'라는 질문을 한다. '아메리카노요'라고 말을 하며 내심 '아~커피는 제가 살게요. 뭐 드실 거예요?'라고 묻기를 기다리지만 본인이 먹고 싶은 음료만 말하고 다시 나의 뒤로 빠진다. 별거 아니지만 기분이 상하는 순간이다. 커피가 나왔지만 커피맛은 느껴지지 않으며, 그전에 이뻐 보이던 얼굴이 더 이상 엘프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커피는 본인이 사셔야죠'라고 말할 수 있는 강심장의 남자가 얼마나 될까.
첫 만남에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돈을 전혀 쓰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자 입장에서 두 번째 만남을 기약하고 있지 않은데 커피값마저 본인이 내려니 아까울 수 있다. 밥을 같이 먹을 때야 당연히 첫 만남이니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커피는 선택사항이다. 커피를 먹자는 나의 제안에 수락할 수도 거절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주선자의 얼굴을 봐서 커피를 먹자는 제안에 당차게 거절할 수 없었다면, 커피값을 내는 것보다 그 시간을 같이 보내주는 걸 배려라 여길수 있다. 하지만 나는 속 좁은 인간. 커피 주문만 하고 뒤로 빠지는 그런 모습을 보니 나도 더 만남을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짝을 만나기 위해 수십 번의 반복된 소개팅속에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게 되었다. 마음이 잘 맞았다. 비록 소개팅으로 만나서 사귀게 되었지만 경제적인 관념이 비슷했다. 거창하게 경제적인 관념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돈을 아끼고 허투루 쓰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난 것이다.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곳에 치중하는 것보다 실속 있게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궁색하게 산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는 나의 가치관과 지금의 와이프의 가치관이 결코 잘못된 건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데이트 통장에 각자 정해진 금액을 월초에 넣고, 그 통장에 연결된 카드로만 결제하며 데이트를 즐겼다. 단점보다 장점이 컸다. 서로 기싸움을 하며 밥 먹고 누가 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그 뒤에 이어진 커피집에 가도 저번에 누가 냈으니 이번에 누가 낼 차례인지 기억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괜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었으니 서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더욱이 서로 공용 돈으로 항상 결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낭비벽을 줄일 수 있었다. 월초 각자 데이트 통장에 넣는 금액 자체도 많지 않았는데, 정작 데이트하면서도 가성비를 좇다 보니 그마저도 돈이 남았다.
각자 본인의 돈을 지출하게 되면 출혈이 쓸데없이 크는 경우가 발생한다. 한 사람이 오래간만에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비싼 음식을 대접하면, 상대는 그 이후 그에 상응하는 2차를 대접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된다. 쓸데없이 지출이 더 늘어나는 상황이다. 하지만 데이트 통장을 쓰면 둘의 공용 돈으로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이기에 한 사람이 한턱 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저 둘이 함께 각출해서 비싼 음식으로 분위기 내봤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쓰다 보니 단점이 없는 것 같네.
데이트 통장 최고
데이트는 아주 단조로웠다. 여느 커플처럼 맛집을 찾아다니고, 여행 다니고, 사진 찍고, 액티비티에 돈을 쓰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싸고 만족스러울 만한 식당을 찾는 게 우선이었고, 그나마 식당에 가는 것은 우리 커플에게 사치를 부리는 날이었다. 평소에는 집에서 함께 식재료를 장바온 뒤 요리해서 먹었다. 함께 요리하는 과정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돈을 아낄 수 있고, 그 돈으로 서로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게 보람됐다.
흔히들 여자 친구가 생기고, 남자 친구가 생기면 돈을 모으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을 부정할 수 없는 게 아무래도 함께 맛있는 것을 먹어야 되고, 여행도 가야 하고,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해외로 나가기도 해야 하니까. 그뿐만 이겠는가. 혼자면 기념일 챙길 필요도 없는데, 둘이면 각자의 기념일에 100일, 200일, 1년 같은 함께 있기에 탄생하는 기념일도 더해진다. 이런 것은 당연히 소비로 이어지고, 혼자일 때보다 돈을 모으기가 더 힘든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데이트 통장을 쓰고 나서부터 오히려 혼자일 때보다 돈을 더 모으게 되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음식이나 여러 액티비티는 혼자서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보다 2명 이상의 상품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집에서 요리를 해 먹어도 파 한단을 사서 여러 날 먹는 게 싸지, 지금 당장 먹을 파 한쪽을 사서 먹으면 비싼 값을 치루어야 한다. 지금의 와이프와 연애할 때 부부가 아닌 커플이었지만, 경제적인 부문과 정서적인 부문에서는 거의 부부나 다를 바 없었다. 내 돈도 너 돈이고, 너 돈도 내 돈이다. 서로에게 얻어먹으려고 하지 않았고, 각자 모으는 돈이 함께 모으는 돈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랬기에 소비에서도 항상 함께 였고, 아낄 수 있는 상황이면 내 돈만 아끼는 게 아니라 함께 아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와 와이프는 차곡차곡 돈을 모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