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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둥바둥 김대리 Dec 19. 2021

잠꼬대조차 영어로

지방대생인데 현대자동차 다니고싶어


'지방대생인데 현대자동차 다니고싶어' 의 글들은 회가 이어지는 연재 형식이 따르진 않습니다. 내용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글감이 생각날때마다 쓰는 형식이라서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읽으셔도 됩니다. 타고난 글쟁이가 아닌 다소 투박하고 거친 공대생이 쓰는 글이라 그런것이고, 고민하며 글을 쓰지 못하고 미루는 습관보다 다듬어 지지 않고 구성이 다소 엉망이더라도 글을 일단 쓰는 습관을 들이기 위함이오니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막막한 현실 속에서

나의 구세주 영어




'아들! 일어나 봐!' 새벽에 나를 흔들어 깨우는 부모님이었다. 뭔 일이 일어났나 하고 일어났다. '아니 새벽에 왜 깨우고 난리예요!'라고 짜증이 한가득 섞인 목소리로 눈을 비볐다. 인생도 막막하고, 괴로운 이때에 잠조차 편히 잘 수 없는 이 척박한 현실. '도대체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영어 같기도 하고, 잠이나 잘 것이지.'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다시 부모님과 이야기를 해보니 내가 잠꼬대를 영어로 하면서 중얼중얼거렸다는 것이다. 이거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웬 새벽에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중얼중얼. 누가 보면 산스크리트어로 혼령술을 하는 줄 알겠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평점을 갈아엎는 것과 동시에 방학 때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영어 공부였다. 처음에는 취준생들이 흔히 하는 루트대로 유명하다는 토익책과 학교 내 어학원을 등록했다. 다들 그렇게 토익점수 900점 이상을 만든다고 하더라. 나의 친구도 그렇게 해서 토익 고득점을 취득한 터였다. 나로서는 토익점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달리 선택사항이 없었다. 그렇게 지루하고 답답한 암기식 토익공부가 시작되었다. 매일매일 어학원에 출석 도장을 찍는건 곤욕이었다. 공부하고 암기하는 게 힘들었던 게 아니다. 그저 이런 방식으로 토익공부를 열심히 하면 고득점은 가능할지 몰라도, 여전히 외국인과 대화조차 못하는 어벙벙이가 될게 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공부하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토익 고득점을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퍼부은 뒤에는 영어회화는 따로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하고도 정확한 나의 예측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공부인가.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영어를 못하다니...



그렇게 학교 내 어학원에 토익 과정과 동시에 영어회화 과정도 등록하였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토익점수도 필요했고, 영어면접 때 쏼라 쏼라 입을 털기도 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영어회화 수업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에 느낌이 왔다. '하... 이것도 답이 없다.' 고작 일주일에 2~3번, 그것도 한번 강의할 때 10명을 모아 두고 1시간 정도 실용영어회화 책으로 몇 번 입 밖으로 내뱉는 것으로는 내가 원하는 영어회화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데로 가다가는 내 인생 폭망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수업이 끝나고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와 함께 터벅터벅 도서관으로 걸어 들어갔다. 매번 앉는 자리에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옆에 친구는 앉자마자 토익책을 펴놓고 열심히 외워되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더 들어 오픈된 좌석의 다른 취준생들을 보니,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토익책을 벗 삼아 행복한 얼굴을(?) 하며 열심히 암기를 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오늘은 공부하기 글렀다!'라고 선언하며 전공서적과 토익책을 사물함에 넣어둔 채 교보문고로 달려갔다. 왠지는 모른다. 그저 서점에 가면 내 인생의 해답이 있을 것만 같았다. 영어 코너에 도착하니 수많은 토익, 토플 등의 관련 서적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하... 책이 문제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며 다른 카테고리 서적란을 기웃거렸다. 그렇게 자기 계발 서적란에 놓여 있는 영어 관련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이름은 '박코치의 기적의 영어학습법'이었다. 영어회화 관련된 서적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영어 회화에도 학습법이 존재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라면 그저 단어를 외우고 단어 단어마다 끊어서 해석하는 게 당연했던 나에게는 영어회화에도 학습법이 있다는 게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뭐... 까짓 거, 얼마 하지도 않는데 사가자' 라며 다른 책들과 함께 결제를 하고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들리는 데로 그대로 따라 하기

쉐도우 리딩의 시작




멘털이 나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공부한 영어는 공부가 아니었다. 영어만큼은 지금까지 헛발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의 영어 학습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을 직감했다. 아니 대한민국의 영어교육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오지랖 넓은 생각마저 하게 만들었다. '이거다!' 싶었다.



애기들이 언어를 학습하는 방법과 동일하게 그저, 들리는 데로 따라 하면 된다가 이 책의 핵심 내용이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와 타당성은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나는 공대생이다. 논리적으로, 이치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으면 행동을 옮기지 않는데, 완전히 패배했다. 이 책의 주장과 논리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의 나의 영어학습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빠르게 선회하였다. 책을 10번 이상 정독하고, 20번 이상 밑줄을 그어가며 보고 또 보고 학습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 학습법은 쉐도우 리딩이었다. 개념은 거창해도 그냥 어린아이가 모국어를 학습하듯, 성인이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들리는 데로 따라 하는 게 전부인 심플한 학습법이다.



뭐든지 초반이 힘들다. 몸도 익숙지 않고, 뇌의 사고체계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별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밀어붙이는 수밖에. 더군다나 아무것도 없는 현재의 나의 상황에 찬밥 뜨거운 밥 가릴 처지는 되지 못했다. 그래서 스크립트를 프린트하여 모르는 뜻은 찾아가며, 들리는 그대로 따라 하기 위해 중얼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큰일이다. 이 학습법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어폰을 귓구녕에 꽂아둔 채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은 도서관에서 큰 민폐이다. 해서도 안된다. 어쩔 수 없이 도서관 밖 벤치로 나갔다. 그리고 중엉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학교 내에서 자진해서 미치광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동물원에 사자처럼 한 번씩 쳐다보고 지나갔다.



친구들마저 미쳤다는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고. 모두가 토익책으로 도서관에 틀어박힌채 공부하며 고득점을 만들어가는 상황 속에서, 나만 이렇게 다른 노선을 타는 것은 굉장히 큰 모험이었다. 시간은 얼마 없고, 이렇게 한들 토익점수가 잘 나오라는 보장은 없었다. 스스로 확신이 필요했지만, 쉐도우 리딩을 몇 날 며칠 한다고 눈에 띄는 정량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때가 수도 없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책을 다시 읽으며, 그리고 다른 영어학습법 책들을 여러 권 읽으며 마음을 다잡기를 수십 번. 그렇게 나의 책장에는 20권이 넘는 영어학습법 및 영어 관련 책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렇게 불안한 미래를 벗 삼아 몇 달을 미치광이처럼 중얼거리며 도서관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제는 드라마 장면을 보면 주인공들의 대사가 자동으로 내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가 되어버렸다. 영어 발음도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니 욕심이 났다. 영어 발음을 뉴요커처럼 바꾸고 싶은 욕심에 영어 발음 관련된 서적도 10권 넘게 탐독하기 시작했다. 이왕 칼을 뽑은 거 무라도 썰어야 했다. '인생 뭐 있나! 이렇게 해서도 결국 안되면 다시 강사로 밥벌이해야지!'라고 다독이며 열심히 나를 밀어붙였다.



이렇게 살다 보니 밤에 영어로 잠꼬대하는 수준까지 이르는 것이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현재 나의 실력이. '진짜 외국인과 내가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해소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한 나의 학습법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직접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학교 사내 게시판에 영어 스터디를 모집하였고, 외국인과 직접 대화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듯 하여 먼저 학국인들과 영어로 입을 털어보고 싶었다. 직접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대화가 가능했다. 다행히 해외에 살고 온 스터디 멤버가 있어서, 그에게도 검증을 해보니,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눈물이 핑 돌 정도의 경험이었다. 모든 것이 보상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을 가져다준 미국을 가보기로 결심하기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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