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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둥바둥 김대리 Jan 15. 2022

공무원 월급 99만 원 받아도 좋아

나도 이제 월급쟁이

99만원 이지만 마냥 좋아

드디어 나도 사회 일원



"맡겨만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나이 23살. 공무원이 되고, 수원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발령 전에는 어디에 발령이 나더라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월급을 얼마 받건 나에겐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사회 일원으로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나 사람은 참 간사하다. 나의 앞의 동기들이 이천까지 발령 나는 걸 보니 '나는 거기까지는 제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먼곳에 발령나지 마라...'



전화가 왔다. 인사담당자였다. '거주지가 어디시죠?' 분명 나의 거주지를 파악 후 출퇴근 거리를 고려해 발령을 내주기 위함이었다. '출퇴근은 어떻게 하세요?' 출퇴근을 어떻게 하냐니. '저는 뚜벅이로 출퇴근을 해야 되고 차도 없고 운전면허도 없어서요..'라며 인사담당자에게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해가면서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으로 발령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배려를 받은 지역이 수원이었다. 아싸.



그렇게 왕복 3시간, 뚜벅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출근을 위해 집 밖에 나와 마을버스를 탄다. 그리고 이어진 일반버스, 지하철, 열차, 다시 버스. 이렇게 나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대중교통으로 그랜드슬램 달성. 지금 나이의 체력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안된다. 그런데 힘들었냐고? 전혀. 공무원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기에 나는 무한 긍정 여자로 바뀌어 있었다. '자취를 하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출근을 하니 참 어색했다. 알바라도 했으면 사회생활이란 걸 미리 해봤을 터. 그런데 대학 때려치우고 바로 시작한 공무원 준비였기에, 어른들 틈에 서있는 나의 모습이 도저히 적응이 안됐다. 어른들 틈에 낀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렴 어때. 그 어른들 사이에 껴서 함께 일을 하고, 내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출근하자마자 그 책상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기에 그건 다들 퇴근하신 뒤에 하기로 결정. 그리고 찰칵.




99만 원 월급으로 내 생의 첫 플렉스

역시 첫 월급 선물은 빨간 내복이 최고야



8시 반까지 출근을 하려면 7시 20분 기차는 타야 했다. 그런데 눈을 뜨니 이미 시간은 7시 20분. 망했다. 영등포에 있어야 할 내가 아직 이불속이라니. 그런데 이상했다. 내 눈의 보이는 장면들이 울렁거렸다. 갑자기 진짜 눈이 떠졌다. 꿈이었던 것이다. '휴 다행이다.'  사회 초년생이라 긴장감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출근 후 아침인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때쯤, "김주무관, 월급날이네! 얼마 들어왔어?"라며 실장님이 물으셨다. 실장님도 옛날 신규일 때가 생각나셨는지 내 월급을 궁금해하셨다. 나도 내 월급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궁금했다. '어라 월급은 어떻게 확인하지?'라고 생각할 때 즈음 실장님이 월급명세서 조회방법 알려주셨다. 내 명세서를 보고 실장님은 내 월급이 귀엽다는 듯이 풋 웃으셨다. 세금 떼고 점심값 떼고 이것저것 제외하고 99만원. 내 생각보다도 적긴 했다. 백만원은 넘을 줄 알았는데... 쩝.. 그래도 '내가 잘못을 하지 않은 이상 일정한 돈이 월급으로 들어오잖아!'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돈도 알뜰하게 쓰면 적은 돈은 아니었다. 



이 첫 월급으로는 뭘 할까? 지금이야 치킨값이 기준이지만, 노량진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나의 기준은 주먹밥 1500원. 무엇이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모님 선물 사고 저축할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혼자만의 계획을 세우고 부모님께 이번 월급은 내가 알아서 쓰겠다고 당당히 말씀드렸다. 선물을 뭘 살까 고민하다 첫 월급 선물은 아무래도 빨간 내복인 것 같았다.



평소에 내 물건을 산다면 인터넷에서 이 가격 저가격 비교해보고 샀겠지만, 첫 월급 선물이니 이왕이면 백화점 로고가 쓰여있는 포장지로 포장된 선물을 사드리고 싶었다. '백화점에서 좋은 거 있으면 가격도 안 보고 산다!'라는 생각으로 속옷 매장으로 향했다. 기능성인지, 소재는 어떤 게 좋은지, 따져 고른 뒤 가격을 확인했다. 하나에 12만 원이 넘는다. 내 예상을 벗어난 금액이었다. 내 지출 계획에는 없는 돈이었지만, 어쩌겠나. 첫 선물인데 이 정도는 써야지. 내가 세운 예산 밖 소비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의 첫 월급으로 플렉스는 그렇게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받은 돈은 적었지만 '그래도, 다음 달에 돈이 또 들어오잖아?'. 나는 그저 23살 어린이. 그저 어른들 틈에 껴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어른흉내를 내는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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