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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둥바둥 김대리 Jan 14. 2022

영어회화, 듣고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그렇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영어공부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취업을 앞두고 시작한 뒤늦은 영어공부. 아니, 영어공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영어회화 학습. 공부와 학습은 미묘하게 다르다. 공부는 뭔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고 '책상과 의자'라는 단어가 연상이 된다. 하지만 학습은 자발적인 느낌과, '두 발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그런 느낌이 있다. 익숙해지면 내 몸이 기억하는 그런 느낌.




듣고 따라 하기만 하세요

무슨 개똥 같은 소리냐. 말이 쉽지.



"암 쓰때닝 인 더 미를옵더 까풰티어리아"



이게 뭔 소리지? 소리 영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고 내 머리는 한대 얻어 맞은터였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영어공부를 문법과 독해만으로 교육받아온 나는 '영어를 아기가 모국어를 배우듯이 듣고 따라 하세요'라는 교육방식은 나에게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 단어 암기와 문법공부에 지쳐있었고, 그래서 영어가 너무 싫었고,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었다. 게다가 그렇게 공부해도 영어 한마디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답답했다. 그랬던 터에 '듣고 따라 하는' 소리영어 학습법은 나에게 답답한 속내를 뻥 뚫어주는 뚫어뻥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현실세계는 역시나 책과 많이 달랐다. 도대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들리지 않았다. '암 쓰때닝 인 더 미를옵더 까풰티어리아' 100번을 반복해서 들었는데, 단 한 글자도 듣고 따라 할 수 없었다. 심지어 200번 들었는데, 받아쓰기조차도 할 수 없었다.



프렌즈의 대사 중 하나다. 영어회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아기가 모국어를 습득하듯이 듣고 따라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려면 현지 영어를 들어야 하고, 실생활 영어회화를 가장 현실감 있게 배울 수 있는 것인 미국 드라마였다. 그중에 단연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미국 드라마는 프렌즈. 나 역시 수많은 전문가의 조언을 따라서 미드 프렌즈를 다운로드하여 자막을 지우고 반복해서 보기 시작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영화보다 짧았지만, 반복해서 청취한다는 건 거의 고문 수준에 가까웠다. 게다가 1분 동안에 쏟아 내는 주인공들의 말들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분량이었다. 1분까지 가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단 30초 동안의 대사조차도 들리기는커녕, 흉내 낼 수도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이를 악물고 해 보았지만 도대체가 이런 방법으로는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참고, 계속 듣고 따라 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됩니다'라고 전문가는 그러는데, 그전에 나의 멘털이 먼저 나가버릴 것 같았다. 5분 정도의 분량만 반복 청취해도 이렇게나 지루하고, 속 터지는데 어떻게 전 시즌의 에피소드를 다 듣겠는가. 뭔가 재미라도 있어야 하겠는데. 처음 볼 때는 모르는 내용이니 재밌게 보아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보면 그나마도 재미가 없는 게 현실이다. 다른 미드를 선택한들 현실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영어자막 vs 무자막

결국, 자막을 틀어버렸다



결국 난 자아분열을 해버렸다. 누구는 자막을 보고 하는 게 효과적이다고 하고, 어떤 누구는 자막 없이 듣고 따라 해야 된다고 그러고. '도대체가! 누구 말이 맞냐고!'. 수많은 책을 읽고 폭풍 검색을 해보았다. 시작을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좀 더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기반하에 빠른 시간 영어회화를 익히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이 '우와~'라고 할 만큼 세련되게 뉴욕 발음을 구사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시작부터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자막을 보지 않고 학습해야 한다는 전문가 부류의 논리는 탄탄했다. '어린 아기들을 보세요! 그들이 어릴 때부터 한글을 배울 때 텍스트를 보면서 익히나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냥 청각으로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옹알이를 거쳐 어설프게 따라 하다 보면 한글을 깨치는 것과 같았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안 들리는 건 당연하고, 하지만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의미도 알게 되고 현지인처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막을 틀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운 콩글리쉬에 매몰되어 현지인처럼 발음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당최 무슨 소리인가? 가령 'I am a student'라는 문장이 있다면, 우리는 콩글리쉬로 이렇게 읽도록 배웠다. 따박 따박 '아이 엠 어 스튜던트'.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발음되지 않는다. '암어 스뜌런ㅌ'. 심지어 마지막 스튜던트의 '트'발음도 발음하지 않고 혀끝만 입천장에 붙인 체 발음이 마무리된다. 만약 자막을 틀게 되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발음 공식에 매몰되어 들리는 데로 따라 하지 못한다는 게 이론 학자들의 주장이었다.



혹할만한 탄탄한 논리였다. 그래서 자막 없이 반복해서 프렌즈를 보았는데. 왜 이렇게 답답한 것일까. 100번넘게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들었는데도, 의미 파악은커녕 흉내도 잘 못 내겠다. 1,000번 들은들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의미 파악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것일까? 나의 이 물음표는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느낌표로 해탈이 되었다. 스님도 아니고. 해탈이라니.



어린아이의 학습과 성인의 학습은 달라야 한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며 듣고 따라 하는 것은 거의 본능을 따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성인은 이미 뇌가 모두 발달되었고, 본능보다 이성이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방식으로 언어 학습에 접근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어린아이는 일단 의미는 모르지만 따라 하고, 부모의 반복된 설명과 피드백으로 서서히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양방향으로 소통이 가능하단 뜻이다.



하지만 미국 드라마는 일방적 소통이다. 아무리 반복해서 청취한다 한들 미국 드라마는 우리에게 대답해주지 않는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본들 주인공들 사이의 표정과 제스처로 파악이 되는 문장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문장들이 더욱더 많다. 이런 상황인데 시간을 투자해 주야장천 듣는다고 '결국엔 나도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겠지? 계속 따라 하다 보면 저절로 방언이 터지듯 줄줄 영어를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은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결국 이런 결론에 다다르자 나는 곰플레이어에서 자막 없이 재생되던 휑한 공간을 자막으로 채워버렸다.




사람마다 모두 달라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없다



알아냈다. 그 기괴했던 문장인 "암 쓰때닝 인 더 미를옵더 까풰티어리아"는 "I'm standing in the middle of the cafeteria" 였던 것. 충격적이었다. 여태껏 저 문장을 발음하려면 '아이 엠 스탠딩 인 더 미들 오브 더 카페테리아'라고 배웠는데 말이다. 그런데 저놈을 이렇게나 세련되게 발음해 버린다고? 이게 버터발음이라고?



해석조차 되지 않았던 이 문장은 결국 '난 카페 중앙에 서있다'라는 의미였다니. 자막을 틀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2차 충격은, 내가 모르는 단어가 이 문장에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단어라도 있었더라면 스스로 위안이라도 했을 텐데. 거의 유치원 수준의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이었다니. 그걸 단 하나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니. 자괴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도대체 영어공부를 한 거야 안 한 거야?'



영어 자막을 틀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깨달음이었다. 누군가는 영어 자막을 틀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영어자막 없이 학습해야 한다고 하고. 모두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는 맞고, 누군가에게는 틀렸다는 것이다. 각자 학습의 수준이 다른 것이고, 각자 성향이 다르다. 한두번 자막 없이 보다가 자막을 틀면 효과적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자막을 틀고 보는 게 누군가에게는 효과적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전문가들이 '프렌즈'를 미드 중 단연 최고로 꼽는다 한들, 내가 재미가 없다면 다른 미드를 선택해야 한다.



사실 이건 영어공부에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었다. 나의 삶 모두에 적용되는 진리였다. 어떤 학원이 잘 가르친다더라고 하길래 정작 가보았지만, 강사의 강의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으면 나의 시험 점수는 올라가지 않는다. 모두의 이상형인 여자라 한들, 나랑 맞지 않다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이런 깨달음은 앞으로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하는 데 있어서 직면해야 할 10단계 중 1단계였고, 나는 무사히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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