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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둥바둥 김대리 Apr 20. 2024

적성 따위를 운운할 때일까?

적성은 존재하지만, 실체 하진 않는다



평소에 '적성'이라는 단어와 의미에 대해 자주 생각을 하는 편이다. 그건 아무래도 삶을 살아가면서 어렸을 적 가졌던 고정관념과 생각의 변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적성'은 존재한다는 믿음 말이다.

그런데 삶을 살아보니 '적성'이라는 게 존재는 하는 것일까 하는 반문이 드는 경험들을 많이 하였다. 대표적으로 책, 나의 전공인 기계공학이다.



항상 바닥이었던 언어점수



입시준비가 한참이던 고등학교 시절. 항상 나를 괴롭히고 발목을 잡은 과목은 언어였다. 주어진 시험범위를 외우고 이해하고 시험에 임하던 공부방식으로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과목인 언어.

언어시험은 항상 나에게 고통과 파멸, 모멸감을 가져다주었다. 시, 소설, 수필 등 아직도 다 알 수 없는 언어 장르 속에서 시험 범위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공식처럼 외운다고 답을 찾을 수 있지도 않았다.

언제 즈음인지 몰라도 오기가 생겨서 시험에 나올 수 있는 소설을 다 공부해 보자 하는 심정으로 10개년 수능출제 소설을 다 씹어먹을 생각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던 기억도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도전이었고 실패하였다)

그런 내가 책을 협찬받아 공짜로 책을 읽고, 책서평을 쓰고, 이제는 말도 안 되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좋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도 말할 수 있는 스스로가 신기하기만 하다.

문장도 미숙하고, 당연히 생각의 미숙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여전히 수준미달이기는 하지만 즐기다 보면 언젠가는 농익지 않을까 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때 언어를 죽도록 싫어했던 나에게 아이러니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적성은 찰나의 계기로 생길 수도 있는 거야



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나의 대학 전공인 기계공학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기계공학선택은 사회의 흐름이 나를 강요한 선택이었다. 거창한 꿈은 아니 더리도 일말의 자존심으로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부시고 조립하는 걸 좋아했어' 라며 스스로 선택한 전공이라고 다독였지만, 대학시절 4년 내내 방황의 연속이었다.

수학과 과학을 잘한다고 기계공학전공 역시 잘하리라는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1학년때 처참히 깨져버렸다.

실물을 보지도 못하고 온갖 이론으로 점철된 백과사전 같은 두께의 기계공학책들은 전공에 대한 혐오감을 더 키울 뿐이었다. 어떻게든 공부의 목적과 당위성을 찾기 위해 노력을 수도 없이 하였지만, 그때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그런 나의 순수한 탐구에 대한 호기심을 가볍게 짓밟고, '그냥, 족보 보고 외워. 그냥 나온다니까 공식만 외워'를 강요하였다.

납득이 되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은 나의 성향은 대학생활과 너무 맞질 않았고, 그로 인한 결과는 대학생활 부적응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낮은 평점은 덤이었다.

나의 이런 발버둥은 자동차회사 인턴으로 전환점을 맞게 되었고, 자연스레 10년 넘게 자동차 업계에서 돈뽕(?)을 맞으며 살게 하는 진귀한 선물을 선사해 주었다.

대학 생활을 하며 기계공학 못지않게 나를 괴롭히던 학문이 또 있었으니 바로 영어였다. 다행히 자동차 인턴이라는 전환점으로 기계공학에 흥미가 가뭄의 단비처럼 생기긴 하였지만, 이미 낮아진 평점을 돌리기에 역부족이었고, 취업을 코앞에 둔 나에게 사회는 영어점수를 또 한 번 강요하기 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괴팍한 나의 성향 탓에 두꺼운 토익책과 비싼 토익학원 등록은 역시나 영어에 대한 혐오감과 사회의 반항심만 더 키울 뿐이었다.

토익점수를 높게 받은들, 외국인 앞에서 여전히 사시나무 떨듯이 식은땀 나게 만드는 현실이 너무 싫었고. 대한민국 취준생 모두가 그 현실에 가담하는데 나까지 그 흐름을 가속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남들과 다른 노선을 탄 덕에 지금은 영어로 업무를 보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에도 미국출장 중 비행기 안에서, 휘발될 것 같은 생각의 한줄기를 붙잡아 글을 써내려 가고 있다.



적성은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사설이 길었던 이유는 적성이라는 것은 존재는 하겠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여서 아애 쳐다도 봐서는 안 되는 그런 존재는 또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도 싫고 발목을 잡았던 언어라는 과목이, 연한 계기로 읽게 된 책 학권으로 책벌레가 죄고, 브런치작가로 입문하게 되는 계기 마련하듯.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전공공부가 실제 인턴회사 생활을 통해 생각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고. 작은 경험들이 쌓여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관심이 재미로, 그리고 그 재미가 생업으로까지 이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며 인생에는 적성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를 외치며 다니고 있다.(물론 마음속으로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나랑 적성에 맞지 않아'라고 말을 하며 기회조차를 박탈하는 대신 '조금만 기대 수준을 낮추어서 시도는 해보자. 혹시 알아? 적성에 맞을지?' 라며 이것저것 다 쑤시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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