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억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린 Sep 03. 2015

이산

- 네 번째 마음

한 날엔 라디오가 있었다.

오랜 세월이 잔뜩 끼여서는 자작자작 소리만 뱉어내는 라디오가 있었다.

장난을 치다 라디오를 떨어트린 날이었다.

너는 머쓱히 웃으며 떨어진 라디오를 주워들곤 엉성 시런 모양으로 그것을 이리저리 살핀다.

툭툭 쳐보고, 그것이 소리를 뱉어내는 구멍을 들여다보고, 괜한 안테나를 주욱 빼어 들었다가 다시 집어넣고.

그러고는 영 진단이 서지 않는지 슬쩍 라디오를 내려놓곤 괜한 말을 한다.

역시, 떨어지면 고장 나는 법이야.

 네가 그 라디오만큼이나 오래되어, 네 뇌 주름 하나하나에 그 세월이 잔뜩 끼었다고 하면 할 말이나 없다.

그 말을 내뱉은 때를 손가락으로 셈도 할 수 있을지언정 너는 아예 잊은 것인가.

떨어지면 고장난다는 그 말을 말이다.

그래서 너는 내게서 떨어져도 아무런 탈이 없을 줄로 알고 그렇게 간 것이란 말이고.

 네가 그때 떨어트린 라디오는 완전히 망가져 통 쓸 수가 없다.

 그나마 뱉던 밭은기침 같은 소리도 나올 기척이 없다.


 나라고 별반 다르겠는가.

떨어지면, 고장 나는 법인 것을.

이미 네가 떨어트렸잖은가.

이 내 마음을.

너로부터.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