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인 삶, 이렇게 힘든 거였어?

일만 할줄 알았던 엄마의 고군분투 생존기

by 날갯짓

9 to 5 직장인들에게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선망의 대상이 아닐까?

일을 하면서도 개인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니, 이건 효율의 끝판왕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랬다.

회사를 그만둔다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모두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보낼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다.

15년 가까이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했던 나.

거주지와 회사가 멀어 50km~100km를 이동해야 했기에 새벽 5~6시에 일어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퇴사 하고 나면, 아침 일찍 일어나 그 누구보다도 보람찬 하루를 보낼 거야.”


나의 기대는… 야무진 꿈이었다.

오늘도 오전 7시 기상에 실패했다.

밤에 집중이 잘 되는 올빼미형 인간인 나는 뒤늦은 공부(…때로는 넷플릭스 정주행) 끝에 늦은 새벽 잠들었고 하루의 시작은 자연스럽게 미뤄졌다.

아이들의 등원도 서서히 늦어지고…

바삐 준비해도 오전 11시 등원 사태가 벌어졌다.

등원이 늦다보니 선생님들께 전화도 자주 받았다. ‘어머니, 지금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쯤이세요 ?’

어느 날 한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대학생 왔어~?’ .....네, 선생님. 정확합니다.

이렇게 하루를 늦게 시작하니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밥 한 끼 먹으면, 곧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왔다. 눈 깜빡하면 하원 시간이란 그 말이 이해됐다.

하고싶은 것들은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도는데… 산만한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그래’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괴로웠다.

황금 같은 오전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퇴사한 건데, 회사를 다닐 때보다 하루는 더 허무하게 흘러갔다.

회사를 다닐 때는 그 시간 돈이라도 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돈도 안벌고 시간만 허비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스스로 시간 운용 능력이 없다는 걸 인지하자 우울했다. 우울감은 곧장 이런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회사라는 틀 안에 있어야만 기꺼이 보람찬 하루를 살 수 있는 사람 이었던건가.'

남편은 말했다. “루틴을 만들어 봐.” 남편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조깅하고 6시 30분에 출근한다. 자신만의 시간을 그렇게 채워가고 있었다. SNS에도 그런 사람이 참 많다. 꾸준히 삶을 쌓아가는 사람들. 나도 그들처럼 조금씩 나아가고 싶었는데… 누군가의 압박 없이 스스로 삶을 계획해본 적이 없던 나는 작심삼일이 될게 눈에 뻔해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니까 가능한 거야.
나는 루틴 만드는 게 너무 힘드네.

세일러즈 일일노트를 쓰고 있습니다 :)

퇴사하기 전에는 퇴사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더니만 퇴사 이후 더 많은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어느 날 밤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아… 그냥 회사 그만두지 말걸, 나의 한계를 몰랐어야 했어.’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며 공상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이어졌다.


나는 스스로 계획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동안 나를 너무 몰랐네.
이제서야 나를 알아가는 탐험을 한다고 생각해 볼까?

나는 그 동안 다른 사람의 눈으로만 나를 바라봐왔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나를 평가하고, 그 기준을 통과하면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의 하루도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총량은 정해져 있을 텐데, 남의 기준으로 ‘이 정도는 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게 내게는 큰 독이었으리라.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갓 사회에 나온 20대 사회초년생이 되어보자!
처음부터 다시 하루를 설계해보기로 했다.

다양한 버전의 나 (엄마, 작가, 학생 등)의 하루를 기록할 다이어리를 샀다.

무언가 못한다면? 내일 하면 되지라고 체크했다.

유난히 산만한 날이라면? 할 일을 대폭 줄였다.

꾸준히 이어가야 하는 일이라면 10분이라도, 걸어가면서라도 손만 대는 것만으로도 OK 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오늘도 아이들을 등원시킨 뒤 카페로 향했다. 집 안에서 침체되어 있기보다 밖으로 나와 뭐라도 하려고 무던히 애쓰는 중이다. 커피값이 아깝다는 생각은 늘 든다. (정말 늘 하는 생각…)

하지만 내 하루가 이 커피값 하나로 바뀐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늘도 커피 한 잔 값에, 글을 쓰는 시간을 벌었다.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있음에 감사한다.

이제 아이들을 데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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