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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Mar 21. 2019

삼십대, 더이상 푸릇한 내가 그립지 않게 되었다

뒤늦은 브런치북 수상 소감

브런치북에 응모하기를 두번째였다.


글만 쓰는 장소가 생겼다고 하길래, 또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길래 브런치라는 곳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로 생긴 시스템이었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방 같았다. 어차피 볼 사람도 없으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말하고 싶었지만 못내 삼켜 내 마음 속에서 켜켜이 쌓인 말과 감정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꺼내고 보니 희미하지만 아직 불씨가 살아있는 이야기들도 많았고 먼지 쌓인 감정들은 후후 불어 깨끗이 닦아 글로 썼다.


삼십대가 되면서 위장이 자주 고장났다. 위염이라는게 뭔지도 모를 때와 다른 세상이었다. 위염이 없었을때의 나와 2년에 한번씩 위내시경을 받는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게 믿기지가 않을만큼 말이다. 그러니까 세상이 변한게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었다. 나는 변해가는 내가 마음에 들었지만 내가 변할수록 세상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기꺼이 싸웠고 열심히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은유 작가님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에 쓰인 "싸울 때마다 질문은 탄생한다" 는 글처럼 싸우며 생기는 질문들에 답을 하며 더욱 견고하게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삼십대, 싹싹하지 말자] 의 글들은 내가 삼십대가 되어 던진 질문들과 그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마음 속에서 아무렇게나 쌓여온 질문과 말들은 부대껴 마음 속을 상처내기 바빴다. 그런데 쏟아내 찬찬히 글로 정리하고 분류하면서 답을 얻기도 하고 마음이 비워지기도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나만의 방이라고 생각했던 이 공간에서 나의 부족한 언어들에 '공감'을 표명해 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무려 깊은 공감 이라고 했다.


나는 나같은 사람이나 위장이 고장나고 버티지 못하기를 반복하는줄 알았다. 나의 삼십대에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줄 알고 철저히 혼자라 생각했다. 글을 쓴 후 혼자가 아니라는걸 알게 되었고 그 공감에 대한 연대의식으로 더욱 내 자신을 인정해 나갔고, 타인의 사랑과 관심에만 집중했던 푸릇푸릇했던 내가 더이상 그립지 않게 되었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 쓰인 구절이다. 언감생심 삶의 엄청난 것들을 관통하는 글을 쓰는 작가를 꿈꾸지는 않았다. 다만 나만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과 그 속에서 내 마음속에 쌓이는 감정과 말들을 가장 적합한 단어로 확실하게 묘사하며 고통이나 기쁨 같은것들을 하나씩 제껴나가고 싶다. 대단한 것을 해야만 대단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고 내 마음속과 내 주변 일상이 글의 노다지라고 생각하는 지금이 있다.


하나도 대단하지 않은 내가 다섯번째 브런치북에서 한번 탈락한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여섯번째 브런치북에 또다시 응모한것은 불발된 책출간에 받은 상처에 대한 밴드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꿈도 못꿀 일이었다. 밴드를 붙였었다는 사실 조차 잊을 즈음 제대로 된 상비약 종합 세트를 받게 될줄이야...


든든한 상비약을 한아름 감사하게 받았으니 이제는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빌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아플때마다 제대로 약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약을 나누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약 같은 책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세상과 부딪히며 생기는 질문들을 더 견고하고 명확하게 글로 써나가고 싶다.


나는 브런치에게 너무 고맙다. 아침과 점심 그 사이의 딱 좋은 시간, 종류별로 담긴 맛있는 한접시를 제공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 매일 매일 브런치 먹으며 들끓는 내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어쩌면 놓쳐 버릴수도 있는 일상속 버스 같은, 날것의 일상을 놓치지 않고 잡아주신 에디터님께 진짜 너무 감사하다.


벼랑 끝에서 매번 두 손 놓고 잘 떨어지는, 버틸줄 모르는 나약한 삼십대, 나에게도 고맙다. 버티지 좀 말자. 지치면 좀 쉬자. 싹싹하지 말자.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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