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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May 20. 2019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으므로

뭐가 그렇게 바쁜 겁니까


출퇴근 때 자기 몸도 다른 몸도 지하철 안으로 욱여넣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조금씩 익숙해지긴 커녕 번번이 속이 뒤틀렸다. 빈속이라 그런가 해서 꾸역꾸역 아침밥도 규칙적으로 먹어봤지만 그것도 별 도움이 되진 못했다.

저렇게까지 자신과 타인의 인성을 날카롭게 조각내 서로에게 비수를 꽂아야만 "먹고사는 일"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좋은 존재가 되기를 완곡히 거부하며 마음속에 시퍼런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갈고닦는 사람들 같았다.

인성을 조각낼 용기도 없거니와 애초에 마음속에 칼갈이를 하며 살만큼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도 없어 나는 늘 도망쳤고 두 발 물러났고 기다렸고 먼저 보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향하는, 그 죽음이 언제 내게 올지 한 치 앞도 모르는 허망한 존재인데 뭘 그렇게까지 상처 주고 비수를 꽂으며 살아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의 평화에 대한 예의


출퇴근을 하지 않게 된 나는 지하철을 꼭 한두 대씩 보내는 의식을 치른다. 나의 평화에 대한 예의였다. 몇 대를 침착하게 보내고도 성에 차지 않으면 열대도 애써 놓치며 역사 의자에 앉아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쓰곤 했다.

죽음의 한기를 느끼지 않는 한 뱃속의 사람이 역겨워 이미 토해낼 것 같은 상태의 지하철에 내 몸을 구겨 넣거나 아직 나오지 않고 뒤엉킨 사람들을 더 구겨지게 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남을 구기는 짓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아무리 탈 사람이 많은 시간에도 기다리다 보면 연달아 오는 탓에 소화가 잘되는 공복의 위장을 가진 지하철이 오고야 만다는 걸 알기 때문에 타인을 구기며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남을 구기지 않고   있는 지하철은 온다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으므로.





쓰는 아도르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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