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

최대치의 외로움과 반대의 것들_0701

by 아도르
영화 [나 이제 사랑하고 싶어]



코로나 여파로 그렇지 않아도 바쁘지 않은 일상, 더욱 고요해졌다. 한편으론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서 복잡하지 않은 마음이 좋으면서도 부쩍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왠지 외롭다는 말을 내뱉고 싶지는 않다. ’외롭다’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논리와 용기가 필요하다. SNS조차도 솔직하게 올리면 인기가 없다. 수많은 행복전시들 속에서 우울한 여자로 낙인찍히기나 하지.


어떤 드라마에서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여주인공이 혼자만 아는 장소에 앉아있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남주인공이 그녀에게 물었다. "왜 여기 혼자 있어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냥,, 외로워서” 포장되지 않은 여주인공의 솔직한 한마디와 장면이 기억에 두고두고 남는다. 그 외롭다는 한마디에 마음속 깊은 끄덕임을 느꼈고, 멋져보였다. 외롭다는 말을 나도 처량해 보이지 않게, 멋지게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면 왠지 외로움도 멋지게 승화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삶은 참 외롭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혹은 어떤 날들 내내 인간본연의 외로움에 유기적인 외로움이 더해지고 인공적 외로움이 곱해질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외로운 순간은 마흔에 가까울수록 그 몸서리 쳐치는 정도가 매번 새롭게 경신된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내 인생 최대치의 외로움에 도달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외로움을 슬기롭게 잘 즐기며 보내는 것 같을지 몰라도 이십대의 단순한 외로움과 다른 이 복잡다양한 외로움을 견디느라 애쓰고 용쓰는 중이다.


외로운 순간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역시 '나만 외로운건 아니라는걸 확인하는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 넷을 낳은 친구는 ‘있는데 외로운게 가장 외로운 것’이라 했고, 어느 시인은 ‘살아있으니 숨쉬는 순간 순간 외로운 것이 인간’이라 한다. 어차피 외로운게 인간의 삶이라면 이 외로움에 이기거나 애써 지워내며 싸울 것이 아니라 차라리 받아들이고 함께 껴안아야 하는게 아닐까. “나의 외로움을 껴안겠다”고 쓰고 보니 어쩐지 마음이 푸근해지며 시골의 노을지는 풍경이 떠오른다. 외로움을 껴안는다는건 어쩌면 고요한 해질녘 인적 드문 평상에 누워 푸근한 저녁을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외로워진다. 공허해지고 무의미 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외로움을 껴안기도 하고 외롭다고 시원하게 말하기도 한다. 싫은걸 싫다고 말하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어느 여주인공의 "외로워서"라는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통과해 시원하게 반갑다. 나는 이렇게 나이를 먹고 있다.


참 외롭지만 조금 너그럽고, 마음의 구멍을 메우려 애쓰기보단 그 구멍으로 부는 바람을 조금 즐기게 되었다. 가끔 예전처럼 붉게 달아오른 마음을 발견하면 화가 나면서도 반갑기도 하다. 나 아직 가끔 뜨겁다고, 나 아직 뜨겁게 화를 내기도 한다고.


드라마와는 다르게 여기서 뭐하냐고 나의 공간을 찾아내는 멋진 남자는 아직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게 외로움을 조금 증폭시키긴 하지만 뭐 어쩌랴. 그건 내 노력밖의 일이다. 인연을 실로 엮을수도 없지 않은가. 내가 노력할 수 있는건 노력하고 할 수 없는 건 내려놓는 나이, 그런 나이가 되고 있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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