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한 사람 만으로도 힐링
2018년 [데릴남편 오작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한 사람, ‘요즘 세상엔 이래야 한다’하는 모든 상식들이 적용되지 않는 남자, 그가 바로 ‘오작두’였다. 드라마를 보며 이런 남자라면 이 무시무시한 세상에서도 이런 저런 말들에 흔들거리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욕심이라 일컫는 모든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그의 영역 안에서는 삼시세끼 밥만 먹고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았다. '힐링'이 소확행 쯤으로 가볍게 쓰여지는게 탐탁잖은 세상에서 '힐링'이라는 뜻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상형이 "세상의 뜻과는 무관하고도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한건 그때부터였다.
이후 어떤 곳에서도 그런 캐릭터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드라마 한 편이 있다. 드라마속엔 한 여자의 깡에 반했지만 두고 볼수록 그 깡이 안쓰러워 여자의 꽉 쥔 손을 펼쳐 자신의 소매끝으로 닦아주는 남자가 있다. 꽉 쥔 손 펴고 살으라고, 당신의 뒤엔 내가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 이름 황용식. 나는 그를 보며 연기도 연기려니와 ‘촌므파탈’이라는 단어까지 생성해내는 힐링적 매력에 사투리가 품격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꽉 쥔 두손이 안쓰럽고, 그 손을 펼쳐 기꺼이 닦아주는 그 남자를 보고 1회부터 정주행을 시작했다.
그 한 남자의 융단폭격과 같은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동백씨는 고아에다 미혼모이다. 그런데 예쁘다. 예쁘면 외롭다고 했던가. 삶이 외롭다. 그래서 주먹을 꽉 쥐고 산다. 땅만보고 걷는다. 고맙다는 말이 듣고싶어 역사 분실물 보관소에서 일하는게 꿈인 사람이다. 가족이 만들고 싶어 미혼모를 자처했지만 현실은 냉랭하다. 여자가 술을 판다는 이유만으로 남자 여자 할것 없이 모든 생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그의 아들은 영리하게 크고있지만 눈물나는 날이 많다. 기껏해야 열 살 남짓한 아들이 울면서 말하는거다. "세상 사람들이 다 엄마를 미워하잖아, 엄마를 좋아하는건 나밖에 없잖아! 내가 엄마를 안지키면 누가 엄마를 지켜, 그게 가끔 피곤해"
어느날 그들 앞에 황용식씨가 나타났다. 다이애나비가 이상형이라던 그는 동백의 미모에 첫눈에 반하고 그녀의 깡에 두번 반한다. 이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핵폭탄급 돌직구로 동백의 옆에서, 뒤에서 그녀와 아들의 삶을 인정하고 지지한다. 세상의 수많은 눈초리에 굳게 마음을 닫아버린 동백에게 확용식씨는 지치는 기색도 없이 우직하게, 무식하게, 꾸준하게 말한다.
동백씨는 누구보다 멋져유, 장해유,
그의 지구만한 응원에도 쉽사리 마음이 열리지 않을만큼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이 다쳐 있었다. 아이언맨이 와도 뚫지 못할 장벽을 쌓고 사는 그녀였다. 울면 울어서 욕먹고 웃으면 웃어서 욕을 먹었다. 목욕탕엘 가도 욕을 먹고 떡 한조각을 사도 욕을 먹었다. 동백이 욕을 먹는만큼 황용식씨는 더욱 더 강하게 응원했다. 그녀의 가게에 휘갈겨진 벽의 낙서 하나에도 일일이 존댓말로 고쳐쓰는 그였다.
동백씨가 지덜 친구여, 왜 반말을 찍찍 하구있어
'힐링'이라는 뜻을 가진 남자
그의 무시무시한 응원에 그녀의 철벽은 무너진다. 세상 모두에게 욕을 먹어도 소용없었다. '힐링'이라는 뜻을 가진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땅을 보고 걷는 그녀의 고개를 들게 만든 그였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을 생일로 만들어 주겠다는 촌스럽고 뜨거운 고백 앞에서 동백도, 나도 눈물을 흘렸다.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나는 걸을때도 땅만 보고 걷는 사람인데 이사람이 자꾸 나를 고개들게 하니까,
이사람이랑 있으면 내가 막
뭐라도 된것같고 엄마,
자꾸 또 잘났다 훌륭하다
막 지겹게 얘기를 하니까,
내가 꼭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변화도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고 기적도 자기자신이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나다. 그런데 황용식씨라면, 힐링이라는 뜻을 가진 사람 하나라면 나도 누군가에게 기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캐릭터다. 한 사람의 우직하고 일관된 응원, 이래서 필요하다. 동백씨와 황용식씨가 함께 울때 마음이 울렁거려 혼났다.
한 사람의 꽉 쥔 두 손을 펼쳐 땀을 닦아주는 이 남자가 좋다. 동백씨처럼 세상의 모든 미움을 사며 사는 사람에겐 황용식씨가 꼭 하나씩은 있었으면 한다. 나의 꽌 쥔 두손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 기꺼이 펼쳐 손을 잡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을, 나아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장면을 보며 시 하나가 떠올랐다. 나도 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 수 있을까.
문태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
여름 자두를 따서 돌아오다 늦게 돌아오는 새를 기다릴 것
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 것
너의 가는 팔목에 꽃팔찌의 시간을 채워줄 것
구름수레에 실려가듯 계절을 갈 것
저 풀밭의 여치에게도 눈물을 보태는 일이 없을 것
이현진 :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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