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건들의 향연
어머님이 이 구두가 마음에 든다고 하셨어요
열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의 구두를 사러 간 매장에서 직원이 남동생에게 한 말이었다. 취준생인 남동생의 면접용 구두를 사러 갔을 때였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고 반복해서 들었을 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슨 감정인지 알지도 못한 채 “다른데 보러가자”고 말을 던지곤 빠른 속도로 그 매장을 나와버렸다. 내가 취준생의 어머님으로 보인다니 실수라고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여동생 남동생 모두 이건 실수도 뭣도 아닌 그냥 헤프닝 이라며 지지리도 센스 없는 구두매장 직원을 탓했지만 화 나는 마음을 쉽사리 가라앉힐 수 없었다. 기분이 잡쳤다는 말은 이럴때 쓰는 말이 아닌가. 그 매장에 찾아가 다시 따져묻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그 이유는 작년부터 약 1 년간 각각 세 사람의 ‘어머니’가 아니냐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10살에서 띠동갑까지 그 나이대의 친구들과 자주 만나며 어울리는 나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웃어 넘겼고 두번째로 들었을땐 어이가 없었고 세번째로 들었을땐 화가 났다. 함부로 나를 엄마로 만든 세 사람의 얼굴은 평생 잊지 못하리라.
‘어려보인다’는 말이 크게 칭찬으로 들리지 않을만큼 보여지는 모습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 나였지만 20대후반의 어엿한 성인들의 어머니로 보인다는건 좀 충격이었다. 스무살에 결혼해서 그 애들을 낳았다 쳐도 사십대후반인 셈인데 그렇다면 내가 10여년이나 늙어보인다는 말이 된다. 초등 3학년에 애를 낳았다고 가정해야 나는 그 아이들의….. 휴. 계산하는 나는 뭘까. 아무튼 예측가능한 선에서의 실수는 웃픈 헤프닝 이었겠지만 이 사건들은 단순한 헤프닝으로 넘겨지지 않았다.
첫번째 어머니세요 사건.
작업실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친한 동생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길래 지나는 길에 들렀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카운터에 서있는 분에게 “민영이는 몇시에 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대뜸 “민영이 어머니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몇 초 동안 할 말을 잃은 나를 빤히 바라보는 카페 사장님의 눈에는 한 치의 의심 없는 말똥함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늙음을 탓해야 하는 걸까, 재치로 이 위기를 모면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화를 내야 하는 걸까 하는 고민들을 하다가 어이 없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니예요.... 저.. 민영이 친한 어ㄴ 닌데요….”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그 상황을 잘(?) 마무리 할까 머리를 굴리다 겨우 내뱉은 말이 그거라니. 세상 황망한 마음에 내 몸의 모든 기운이 다 빠져버린 탓일까. 나 다음으로 황망한 선수는 그 카페 사장이었다. 사장 옆 알바생은 큭큭거리기 시작했고 사장님의 급급한 변명타임이 돌아왔다. 그가 말한 짠내나는 변명은 대략 이랬다.
평소 알바생들의 어머님들이 카페로 자주 오시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세요”라는 말이 입에 붙었나봐요. 진짜 진짜 아니예요. 정말로 그런거 아니예요.(뭐가 아니라는 걸까) 오해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진짜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입니다. 진짜예요! (나를 바라보던 5초간의 티 없이 맑은 눈빛은 뭐였는데)
그 이후 그 카페를 다시 가지 않았다. 카페를 나오며 그런 말을 했었다. 책 잘 읽으시라고, 어떤 에세이를 읽다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인줄 알라고, 소재 주셔서 감사하다고. 굳이 낸다고는 했지만 거절하지 않고 커피 값은 받으셨다. 커피는 별로 맛이 없었다. 맛이 없어서 안간거예요 사장님?
두번째 어머니셔 사건.
내 어린 친구와 삼청동에 전시를 보러 갔다가 그 친구가 잘 안다는 카페에 갔다. 그 카페 알바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보이는 여자였다. 내 어린 친구와 나란히 서서 주문을 하려던 찰나 그 여자가 나를 보며 “어머니셔?” 라고 말하곤 다시 그 친구를 보았다. 내 어린 친구는 당황해 “언니!! 제정신이예요? 어떻게 이 언니가 엄마야 말도 안돼!”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들어버렸다. 50cm 사정거리 안에서의 간결하고도 또박또박한 그 음성을. 그 날 나는 나름대로 옷차림에 신경도 썼었고 포니테일이라 불리우는 머리를 하고 있었다. 골백번 고쳐 생각해도 절대로 스물 일곱살의 어머니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김새가 닮았으면 선택권은 많았다. 언니, 고모, 이모, 숙모 등등…..
그 카페 알바언니는 몇주후 잘렸다고 했다. 손님이고 주인이고 사람들에게 말을 함부로 했더랬다. 내가 들어 기분이 좋아지라고 내 어린친구는 말해줬지만 이미 들어버린 “어머니셔”는 이미 내 뇌의 어딘가에 각인되었다. 이렇게 세 번의 어머니 사건이 있은 후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마는 숟가락을 들고 쫓아가서 그 년놈들의 눈구녕을 파버린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엄마 눈이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내 세번째 자식인 남동생은 피식 웃으며 나를 놀렸다. “아 근데 세 번이면 진짜 그래 보이는거 아냐? 스타일을 좀 바꿔보던지”라는 말을 던지곤 서둘러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오냐 아들아 그럼 돈 벌어서 이 어머님 옷 한 벌 사주지 않으련? 백수주제에 스타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한 번도 아니고 두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어머니라는 소리를 들은 후 나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정말로 나의 스타일에 문제가 있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스무살에 출산한 마흔 일곱으로 보이는 건지, 정말정말로 헤프닝일 뿐인건지. 아직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답을 낼 문제는 아니지만 진위 여부를 밝히고 싶을 만큼 황당하고 화가 나는 헤프닝 이었다.
설마 내가 서른이 가까워진 청년들의 엄마로 보일리는 없다. 조금 구차하지만 내 나이를 말하면 너무 어려 보인다며 깜작 놀라는 사람도 많다. 숟가락을 들고 쫓아갈만큼 센스 없는 눈을 가진 세 사람의 서비스업 종사자들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의 눈을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써 놓고 보니 정말 구차하다) 아무리 보여지는 나이가 상관이 없다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카페 사장님 알바들께 고한다. 진짜 엄마로 보여도 어머니냔 질문은 하지 맙시다. 진짜 어머니 한테도 언니라고 하는 서비스정신 좀 배웁시다.
휴우. 삼십대 후반에 적응하기 정말 어렵다. 마흔은 또 어떨까. 고군분투다 정말.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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