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싸할게, 니가 해 인싸.
여러 관계속에서 단단하게 나를 지키자고 아무리 굳게 마음을 먹어봐도 사람들의 아주 작은 시그널에 흔들릴 때가 많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진 존재이며,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기 때문에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머리로는 매번 책갈피를 끼우지만 실전에선 늘 그 책갈피 조차도 잊는다. 내가 자꾸 평정심을 잃고 흔들리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순간적인 기분과 감정에 빠져 넓은 시야로 상황을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면 더 다양한 각도로 상황을 살필 수 있듯, 한 발자국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면 ‘방금 내가 조금 예민했던 것 뿐이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순간적인 감정에만 포커스를 맞춘채 기분을 환기시키지 못하면 사건의 본질보다 더 심각하고 크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순간의 감정을 인지하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과 공간에서 조금 멀어지기만 해도 조금전 나를 불편하게 만든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있지만, 사람들 속에서 뚜벅뚜벅 혼자 걸어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내마음속 깊은 곳엔 언제나 ‘사람들에게 관심받지 못할 바에는 스스로 혼자가 되겠어’라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두해 전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지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격이 좋은 사람, 친구가 많은 사람, 모난 곳 없이 밝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 사람을 속칭 인싸(인사이더’라는 뜻으로, 집단속에서 적극적이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을 칭함)라고 부른다. 인싸가 되고싶으니 여러사람을 만나는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엔 언제나 나를 탓하게 됐다. ‘나는 왜이렇게 성격이 좋지 못하지’, ‘왜 사람들은 나보다 그사람을 더 좋아하는거지’ 소규모의 친구들을 만날때는 문제가 없었다. 내자신을 성격이 좋지 못한 사람이라 탓하게 만드는 만남은 늘 5명이상의 모임이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는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에 지나치게 긴장하게 됐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긴장은 되지만 성격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에 내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쿨한척, 재밌는 사람인척, 오버해서 행동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모임이 있는 날 저녁에는 녹초가 됐다. 낯선사람들이 많은 무리속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게 싫어서 내가 행동할 수 있는 선을 넘는 노력을 하게 되니 피곤한건 당연했다. 한창 모임이 많았던 그땐 나다운게 뭔지, 내가 어떤사람인지 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더 중요했고, 누구도 싫어하지 않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모로 무리를 했었다. 덕분에 나는 꽤 인기가 많고 성격이 좋다는 말들을 듣게 됐다.
그무렵 프리랜서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됐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함께 회사를 만든 친한무리가 있었고 그외에는 새로 들어온 직원이거나 프리랜서였다. 회사의 대표는 나를 코웍 파트너로 직원들에게 소개를 했다. “이쪽은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이현진씨고, 들은바에 의하면 아주 인싸시랍니다! 이미 친한분들도 있고 아닌분도 있는데 다같이 잘지내보면 좋겠네요” 아는 분의 소개로 맡게 된 프로젝트라 잘해보고 싶었언데다, 며칠을 지내보니 멤버들이 모두 좋은 분들인 것 같아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까지 커졌다. 일도 잘하고 사람들과도 잘지내는 좋은사람이 되기 위해 또 새로운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무리에서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순 없다.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회사를 만든 원조멤버중 한명이 나를 경계하며 티나게 다른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담소를 나누는 휴식시간에도 내가 대화에 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프로젝트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나의 의사는 철저히 배제시키거나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오로지 나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뿐이었다. 자꾸 무리에서 제외되곤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밝게 대화에 참여했고, 꼬박꼬박 밥도 같이 먹고 사무실 청소 같은 것도 더 열심히 참여했다. 퇴근후에도 그가 왜 나를 싫어할까,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보니 어떤날은 꿈에서조차 무리에 끼지 못하는 꿈을 꾸곤 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배제되고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한채로 한달이 흘렀을 때 그가 나를 빼놓고 회식을 주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드는 생각은 “기분이 안좋네” 였고 그다음 든 생각은 “친해지려는 노력이 이젠 너무 피곤하다”였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도 슬픈데 낯선 사람이 무작정 나를 싫어하는 건 반칙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리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차가워진 내맘을 달래는 것 밖에 달리 좋은 방법이 없다.
친하지 않으면 그럴수도 있지 뭐.
뭘 기대한거야.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순 없어
무리속에서 중심인물이 되는게 내성격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내 지금까지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는걸 즐기는건 맞지만 사실은 그와 동시에 한사람의 기분이라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눈치를 살피고 친해지는 노력을 하는게 피곤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나만 무리에 못끼면 어쩌나, 행여 내가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조바심내고 불안해하는 내내 피로가 쌓였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한 명을 만나 그친구의 기분을 살피고 배려해주는 건 여전히 즐거웠지만 여러사람과의 모임후엔 쉽게 피로해졌다. 남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 더이상 즐겁지 않았다. 마음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만 했던 그동안의 내자신이 너무 버거웠다. 그렇게 지쳐 주저앉고 나서야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굳이 너를 피로하고 지치게 만드는 모든 관계들과 다 잘지내야 겠어?’ 질문에 대한 내대답은 NO였다. 나는 그날 “인싸 양보합니다. 아싸(인싸의 반댓말) 좋아요”라는 글을 브런치에 올렸다. 인싸가 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편했고 내가 지쳤다는 걸 알게 해준 그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걷다가 넘어지는 건 아픈 경험이지만
가끔은 그덕에 바빴던 걸음에 브레이크를 걸고
하루이틀쯤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젠가 티비에서 연기자 라미란이 더 좋은사람이 되겠다는 가수 강다니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좀 나쁜사람 돼도 돼.
더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
너 있는 그대로 살면 돼
인싸를 양보한 후로는 더이상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도 예전보단 마음이 덜 울렁거린다. 나도 미운 사람이 있고 마음으로 얼마든지 미워할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무리속에서 관계를 노력해야 하는 날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한다. “나에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나라도 언제든 안아줄 사람이 있다. 나에겐 돌아갈 곳이 있다”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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