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마흔
“이제 아무 것도 확신이 없어.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이해 안되는 건 이해하지 않을려구”
통화를 하다 친구가 한 말에 울컥 목이 뜨거워졌다. “맞아”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맞고 맞는 말들만 뱉어내는 친구가 저편에서 나대신 열변을 토했다. 스물아홉에도 두려웠고, 서른 다섯에도 두려웠지만 마흔을 몇 개월 앞둔 지금의 두려움은 되어보지 않고서야 모를 거대한 것이었다. “마흔 너머에도 그만의 세상이 있겠지”라고 미화시켜 보지만 역시 확신이 없었다. 이젠 더이상 작은 무엇에도 확신을 갖지 않는다. 인생사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 아닌가.
예전엔 매사에 확신이 있었고 일단 믿고 시작했다. 뜨거운 감정의 변화들이 있었고 천년만년 그 뜨거움이 지속될 것만 같았다. 그때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마치 강 하나를 건너온 세상처럼 다른 세상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과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변했지만 내 상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회사원이고, 결혼하지 않았고, 가만히 그자리에서 나의 영역을 지키며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겉으론 쿨한척 결혼 따윈 관심없다는 말을 내뱉지만 나도 모르게 그 말을 할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저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결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대로 혼자여도 괜찮은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론 설마 마흔까지 결혼을 못할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언제든 무언가를 함께 할 친구들이 모두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가 될거란 것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정말로 나 혼자만 남게 될 줄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확신이 빗나가고, 아무도 떠나지 않았지만 어쩐지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아이러니한 세상의 입구에 서있다. 이제 인정해야 한다. 나는 결혼하지 않고 마흔을 맞을 것이고 이제 이 새로운 세상에서 나만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이 세상에선 결혼한 사람들의 결혼하지 말라는 말도, 아이를 낳은 친구들의 우아한 싱글을 향한 부러움도 그리 위로가 되진 않는다. 떠나지 않고 떠난 그들이 모르는 사십대 싱글만의 고충을 그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애를 낳아보지 않아서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너는 마흔이 되도록 혼자가 되어보지 않아서 몰라”라고 말하며 의연하게 혼자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고충을. 그리고 정말로 나만 인생을 찌질하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하는 깊은 밤도 그들은 모른다. 겉으론 혼자를 즐기라고 말하지만 왠지모르게 언니가 된 것처럼 충고만 해대는 친구들의 혼자였던 시절을 회상하는 나의 깊은 밤을 말이다.
이해하려고 애썼던 삼십대 후반이 저물고 있다. 결혼한 친구의 다이아를 이해하려 애썼고, 친구의 아이를 무조건 예뻐하기 위해 애썼고, 육아의 고충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같은 세월을 살아왔다는 이유로, 친구라는 이유로 그들을 이해기 위해 애썼지만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친구가 보고 싶었지만 친구 대신 친구 아기의 얼굴을 봐야 하는 것도,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싶지만 친구 남편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도, 왜 결혼을 하면 안되는가에 대한 친구의 열변을 듣는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해보려 애쓸수록 내가 왜 이해를 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인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아니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는 같지만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확신이 없어도 되고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세상의 입구. 이제는 일주일 뒤의 일조차 확신하지 않는다. 이제는 하나 남은 친구와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이해하지 말자고 이야기 하면서도 또 우리중 누가 먼저 떠나게 될지 생각해보게 되는 시절이다. 친구에게 “우리 영원히 친하게 지내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시절과는 다른 시절, 언제든 모든 이별과 나의 혼자를 쿨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이제 이 세상의 입구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에 조금 더 익숙해질 것이고 입구 너머의 세상이 있을 것이다. 이십대에서 삼십대가 됐던 것처럼, 확신할 순 없지만 이해하지 않아도 되어 조금더 너그러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기대를 해보기로 한다. 타이트하게 마음을 졸여야 했던 삼십대와 달리 느긋하게 더 넓은 각도로 주변을 관찰하는 나의 이야기들을. 느슨하게 풀어진 마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상을 보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 나의 날들을.
쓰는 아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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