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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Jan 05. 2024

조용한 빵가게

우리는 고독한 가운데 성장한다.

나는 별로 우는 일도 없이 조용하고 순한 아기였다. 어느 날 혼자 방에서 자던 나는 깨어나 방안을 뽈뽈 기어 다녔다. 그러다 냉장고 콘센트를 뽑아 입에 집어넣었다. 엄마는 내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 놀라 달려왔다. 쓰러진 나를 안고 울면서 병원으로 뛰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내 턱엔 그날의 상처가 남았다. 그 흔적은 가족이나 내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면 늘 그것에 대해 물었다. 쓸모없는 호기심들 덕분에 작은 상처 하나가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 양 늘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건네는 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용한 빵 가게’는 아주아주 많은 말을 쏟아내는 시끄러운 마을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쏟아지는 말들은 너무나 많지만 정작 타인의 꿈을 알지도 못하고 자신의 꿈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늘 흐릿흐릿한 마음으로 길을 찾지 못한 채 갇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에 어느 날 빵 가게 하나가 생겼다. 아주 조용한 빵 가게가. 이 그림책의 여러 장면 중 내 눈길을 사로잡는 페이지가 있었다. 병에 걸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된 어린 지티씨가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있는 장면이다. 나의 어린 시절이 겹쳐서인지 모르지만 친절한 빵 가게 주인 지티씨로 성장하기까지 어린 지티씨가 견뎌야 했던 시간이 생생한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고든 장애든 남들과 다름은 콤플렉스가 되고 그 결과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선택을 하기 쉽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혼자 있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린 지티씨도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앉아 쓸쓸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티씨는 그 어둠에서 스스로 걸어 나왔다는 것이다. 어른이 된 지티씨는 따스하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가득한 빵 가게 안에서 은은한 미소로 손님을 맞고 있다. 남들과는 다름을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인생의 비밀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무채색 삶에도 따스한 색이 입혀지는 참맛을 선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빵에 담긴 비밀재료는 지티씨가 보낸 고독의 시간 안에서 만들어진 비법이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질 들뢰즈의 『대담』 속 한 문단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독과 침묵이 있는 약간의 틈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틈에서 사람들은 결국 할 말을 찾아낼지도 모릅니다. (중략) 할 말이 없다는 것,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입니까. 오로지 그때에만 말할 가치가 있는 극히 드문 것들을 만들어낼 기회가 있습니다.     


그렇다. 지티씨가 빵에 넣은 비밀재료는 바로 지티씨 자신의 ‘조용함’이었다. 그 빵을 먹으면 아주 잠시 조용함이 찾아왔다. 그제야 비로소 마음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마을은 모든 것이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시끄러운 마을과 다름이 무엇인가. 무례한 세상은 끊임없이 무례한 말들을 쏟아낸다. 타인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한다. 그러니 서로의 꿈이 무엇인지 알게 뭐란 말인가.     

 

아이러니한 건 이런 혼탁한 무채색의 세계를 만든 장본인인 사람들조차 내 삶에 기꺼이 갈채를 보내며 응원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내 삶에 따스한 색들이 입혀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무례한 말들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조용히 타인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지티씨의 비밀재료인 조용함은 타인을 향한 다정한 귀 기울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말을 멈추고 상대의 말을 들을 준비를 하는 침묵의 틈 말이다. 조용히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그런 이후에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함 속에서 만들어진 가치 있는 말들은 서로의 마음속에 심어져 다채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삶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돌아보니 나의 상처는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으니 말이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아무리 섬세해도 전혀 넘치지 않는다. 타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뱉은 무례한 말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말은 언제든 타인의 인생 전체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으로 그릇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살리는 말을 해야 한다. 몇 개월간 그림책 하브루타를 진행하며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용기를 주는 말을 나눌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섬세하게 타인을 살피고 조용히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나의 상처도 점점 옅어진다. 이 인생의 비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우리의 태도와 선택에 따라 인생의 비밀을 발견할 수도, 혹은 그대로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어떤 시끄러운 말들도 필요 없다. 다정한 마음 한 자락을 내어주며 함께 걸어가면 된다. 지티씨가 내민 조용함이 불행했던 한 마을을 구원하는 선물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지티씨에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것은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지티씨가 또 다른 차원의 치유를 얻었다고 믿는다. 한 손엔 마을의 한 아이가 내민 선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마음의 새살이 돋아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제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 주며 꿈을 나눌 것이다.     


지금 우리도 지티씨의 비밀재료가 든 빵을 한 입 먹어 보자. 조용히 내 안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삶을 바라보면 분명 알게 될 것이다. 진정한 평안은 서로의 삶을 고귀하게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고독한 가운데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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