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이 흐를 때

나는 아직 영화관에 있다.

by 선비

영화관에서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그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일 수 있다.
영화의 주요 장면들을 천천히 떠올리며, 감독이 남겨둔 음악을 온전히 듣는 시간.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관객의 생각 속에서 마무리가 이어지는 시간.

하지만 혼자서 영화관에 간 게 아니라면, 그 소중한 시간은 늘 방해를 받는다.


“안 가?” 하며 나를 재촉하는 친구의 눈빛과 손짓, 서둘러 나가느라 내 앞을 가로지르며 화면을 가리는 사람들, 자막과 음악 위로 현실이 끼어든다.


이 시간은 단순히 엔딩 크레딧이 흐르는 시간이 아니다.
마지막 장면을 다시 음미하고, 이야기의 여운을 음악에 실어 정리하는 시간이다. 나는 그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좀 더 앉아있으면 간혹 쿠키 영상이 나올 수도 있거든…


어찌 됐든지 떠밀리듯 극장을 나서면 또 다른 위기가 온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
“재미없지 않았어?” (난 재밌는데…)
“원작의 의도가 감독 때문에 과장된 것 같아.” (원작이나 읽고 하는 소린지…)
연기, 연출, 시나리오에 대한 즉석 평론이 쏟아진다. 그 말들은 내가 방금 본 영화에 자꾸 흠집을 낸다. 제발, 조금만 조용히 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수 있다.
문제는 아까부터 휴대폰으로 댓글을 검색하던 한 친구다. 그는 마치 자신이 영화의 최종 심판자인 양, “전체적인 평이 이렇다더라”라며 남의 생각을 자신의 의견처럼 말하기 시작한다.


조선시대에는 삼희성과 삼악성이 있었다.
아이 울음소리, 여인의 다듬이질 소리, 글 읽는 소리가 삼희성(三喜聲)이고,
곡하는 소리, 불이 났다고 외치는 소리, 그리고 ‘도둑 튀기는 소리’가 삼악성(三惡聲)이다.

이 ‘도둑 튀기는 소리’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는 남을 헐뜯는 소리, 멀쩡한 사람을 도둑으로 만들어버리는 뒷말을 뜻한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공감 가는 악성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요즘 사회에서 윤리와 정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리고 언론과 입소문 사이에는 댓글 문화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댓글 문화는 대중이 서로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건강한 장치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댓글 자체가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 여론을 만들고, 누군가를 헐뜯고, 비난하고, 도륙하는 도구가 된 것처럼 보인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의 관심과 팬덤을 자양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악성 댓글을 더 극단적으로 쓸수록 자신의 영향력이 커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오타쿠처럼, 집요하게, 공격적으로.


한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대한민국 영화배우 중에 누가 제일 연기 잘한다고 생각해?”

연기를 잘하는 영화배우라…. 나는 개인적으로 임창정 배우를 좋아해서 순간 떠올렸지만,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괜히 공격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대답을 해도 손해를 볼 것 같았다. 그 친구와 같은 의견을 말하면 한동안 그 친구의 흥분과 찬사에 동조해야 하고, 다른 의견을 말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긴 변명을 해야 할 테니까.


사실 나는 그냥 영화를 감상했고, 연기와 시나리오, 연출, 음악, 이런 기준을 다 떠나서 '약간의 생각할 시간을 곁들인다면 생각을 조금 더 해볼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을 했을 뿐이다.
내 수준에는 이 정도 영화가 딱 좋았다는,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상 말이다.


오늘 하루는 그저,
아무도 나의 이 아우라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나는 아직 영화관에 있으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