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분

일인분 하기 힘듦

by 선비

‘1인분’이라는 말은 단순히 한 사람이 먹는 음식의 양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사회에서, 가정에서, 삶 속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를 함축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1인분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어쩌면 너무도 단순하지만, 그만큼 삶의 중심을 꿰뚫는 본질이기도 하다.


마흔이 다 되어서 공무원이 되었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부담과 생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아서 지긋이 내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사기업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조직의 톱니바퀴가 되어 굴러가기도 했고, 카페를 차려서 손님들과 직원들의 무서움을 접하기도 했으며, 교육사업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며 희망과 좌절 사이를 오갔다. 공무원이 되기 바로 전에는 토익 강사로 강단에 서서 학생들의 눈빛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경험이 내가 1인분을 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기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삶 앞에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서른일곱의 어느 날, 아이가 태어났고 너무도 찬란하고 행복한 시간을 즐길 새도 없이 더 이상 나만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가장으로서의 무게는 단순한 책임을 넘어서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안정된 직장이 필요했고 어떻게든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낮에는 강의하고, 밤에는 책을 폈다. 육아와 생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체력은 고갈되고,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공무원이 된 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안정’이 아닌 ‘초봉의 현실’이었다.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해 왔지만, 조직에서는 이제 막 시작한 신입일 뿐이었다.


때론 자괴감이 몰려왔다. 과연 지금 나는 1인분을 하고 있는 걸까? 남들보다 더 늦게 출발했고, 더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당해온 시간들,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날들, 가족을 위해 눈물 삼키며 살아온 하루하루가 바로 나의 1인분이었다는 것을. 숫자나 직급, 월급의 액수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진심을 다했는가’가 결국 그 몫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늦게 출발한 공무원이지만, 나는 오늘도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진심을 내어놓는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몫, 그리고 그 이상이 필요할 때는 기꺼이 더 내어줄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 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러나 때때로 넘칠 만큼 더 노력해도 미움받지 않을 그런 사람이고 싶다.


나에게 ‘1인분’이란, 단지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최선이 쌓여 언젠가는, 아이가 나를 떠올릴 때 “우리 아빠는 정말 든든한 사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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