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는 없다

우리에겐, 없는(없었으면 하는) 말

by 선비

친한 동생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유 있는 커피 타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형, 저 권태긴가 봐요." 하고 말한다. 좀 놀랐다. 이 친구 첫째 아이가 세 살, 둘째가 두 살이다.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고, 차라리 회사에 나가 있는 시간이 재밌다고.


"너, 결혼 한 지 얼마나 됐지?" 하고 물었더니,

"형, 저도 벌써 결혼 한 지 5년이 다 돼 가요." 하고 대답한다.


"......"


"형은 권태기 같은 거 안 왔어요?" 하고 묻는데,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다.


'나도 권태기가 있었지,....' 하면서 공감 섞인 눈동자로 위로를 하고 싶지만, 솔직히 공감이 안 된다.

그렇다고 '난 그런 거 없었는데?' 하고 말하기에도,....나는 권태롭지 않은가? 생각하면, 또 ....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나도 권태로울 때가 많은데,...' 하고 생각만 한다.

이게 쉽게 안 된다. 생각을 빨리 정리하고 대답하는 것이 잘 안 된다. 누군가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을 이해하는 데에 남들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솔직히 공감이 안 돼. 뭐, 내가 권태기가 아예 없었다고는 못 하겠는데 공감이 안 돼. 하지만 이해는 돼."

(공감이 안되는데 이해는 돼?)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친구보다는 더 오랜 기간(13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벌써 13년이라니, 나도 꽤 오랜 시간을 부부로 살았네.)

사람들은 누구나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지만,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앞의 이해와 뒤의 이해는 다르다. 굳이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해'라는 것은 이렇게 차이가 난다.


개인적으로 이 친구보다 인생 선배, 결혼 선배로써 해 줄 말이 별로 없었다. 결혼 5년 만에 오는 권태기에 대해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형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는 묻고 있지만 나는 아무 대답이나 할 수 없었다.


모두의 인생에는 권태로움이 있을 것인데, 왜 굳이 이것을 '권태기'라고 이름 붙여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모종의 '질환'처럼 얘기하는 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것이 '극복해야 하는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 이런 '기간'이 인생사에 꼭 있는, 넘어서야 하는, 기간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봐, 동생, 혹시 자네는 '혼인관계 증명서'를 꼼꼼히 본 적이 있어? 그렇지, 자세히 본 적이 없을 거야. 거기에 보면 아내의 이름과 내 이름이 한문과 한글로 적혀 있고, 부모님 성함이 적혀 있어. 이것을 하나씩 생각하면서, 한 글자씩 되새기면서 보면 말이지, 나의 아내가 어느 집안에, 어느 성씨이고,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누나이며, 누군가의 손녀딸이고,... 그 한자 이름은 아버님이 지으셨을 것 같은데, 이런 의미가 있네? 하면서 새삼 이 사람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거든. ‘아, 나는 한 여자의 역사에 함께 하고 있구나....’ 하고 말야.

이거를 가지고 아내한테 물어 보는 거야. 당신 이름은 누가 지어 준 이름이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당신이 태어났을 때는 날이 추웠는지, 눈이 내렸는지. 혹시 아내가 모르면 장모님한테 여쭤보면 되거든.
한 번 생각해 봐. 이런 것들을 물어보는 사위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나는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장모님은 물론 어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귀여울 거 같고, 아내는 로맨틱하게 생각지 않을까? 적어도 이렇게 아내에 대해 궁금한 순간들은 '권태'랑은 거리가 있을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내 스스로도 반성을 했다.

아직도 나는 아내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데, 나는 얼마나 궁금해 했을까.


우리에게 권태기는 없다.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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