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는 F보다 훌륭하다.

뜨거운 찬 커피

by 선비

H카페에 갔다. 1층 키오스크에서 과일음료, 라떼, 아메리카노를 각 1잔씩,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조각케이크도 한 개 주문 했다.

2층에 올라갔더니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겨울이어서 햇빛이 가까이 있으면 좋지만, 굳이 햇빛이 눈부셔서 블라인드를 내려대는 것은 모순이다.


잠시 후에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는 문자가 왔다. 요새는 키오스크에서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문자로 '음료가 준비되었습니다'라는 문자가 온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문자를 받고 아내가 1층으로 내려가 음료를 갖고 올라와서 테이블에 내려놓자 아이는 포크로 케이크부터 먹기 시작한다.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내와 그것을 또 바라보는 내가 새삼 기분 좋다.


이런 순간을 잘 담을 수 있게 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순간,

커피를 입에 갖다 대던 아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러냐고 묻자 아내는


"커피가 차가워."라고 말한다.


커피가 담긴 아내의 잔을 갖고 와서 한 모금 마셔 보니, 정말 차갑다.

신기하다. 날씨가 추워서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는데, '얼음은 없지만 차가운' 커피가 나온 것이다.


"그냥 마실까?" 하다가, 안되겠는지 컵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간다.


몇 분 후에 나타난 아내는 그다지 표정에 변화가 없다. 이번에는 커피가 충분히 뜨거운지 모락모락 김이 난다.


1층 내려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자 아내가 말한다.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는데, 커피가 차갑네요." 이렇게 아내가 말하자, 직원은 표정 변화 없이


"커피 다시 타드려요?"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는 가볍게 "네." 하고 컵을 내밀었고, 직원은 커피를 다시 내려줬다고 한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에 직원이 실수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다가 얼음만 빼고 준 것이라면, 실수로 그런 것이니 사과하고 다시 타 주면 될 것이다.


또 만약에 직원이 뜨거운 커피를 내려놓고 너무 뜨거울까 봐서 얼음을 한 두 개 넣으려다 여러 개가 실수로 들어간 것이라면,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나는 화가 나서 커피를 들고 일어섰다.


"왜?!"라고 아내가 묻는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네. 사과 한 마디 하는 게 그렇게 힘이 드나?"라고 말하면서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아내가 말린다.


"일 크게 만들지 말고 앉아요." 라고 말하는 아내의 표정과 눈빛은 부탁 반, 명령 반이다.


나는 못이기듯 자리에 앉는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또 한 번 일어서려다가 아내의 눈빛을 보고 참는다. 아내한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속이 부글거렸다. 아니, 아무리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이해가 안됐다.


앉은 자리에서 핸드폰을 들고 위치를 검색했다. 별점 1개를 주고 댓글을 달았다.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는데, 얼음 없는 차가운 커피가 나와서 이야기 했더니, 직원이 퉁명스럽게 '다시 타드려요?' 라고 하네요. 최악의 가게.




이런 나를 보고 있던 아내가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얼른 지워요. 아무리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야. 내가 괜찮은데, 자기가 왜 그러는 거야?"라고 한다.


나는 화를 삭인다. 거의 십분 넘게 혼자 오만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아내였다면, 커피를 들고 직원에게 갔다면, 분명 화를 냈을 것이다.

내가 갑질을 했을 수도 있다.(정당한 요구나 항의도 갑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아내도 화가 났겠지만 잘 참으면서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올라왔다.

아내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인내심이 좋은 건가?...


나는 조용히 댓글을 지운다. 별점도 지운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일까. 아니면 T(아내)와 F(나)의 차이일까.


T와 F의 차이겠지?


살면서 나는 감정조절에 실패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을까.

화를 내다가(분노조절장애), 슬퍼하다가(우울증), 기뻐하다가(양극성?),... 정말 실수는 많았다.

이런 것들이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서 생기는 질환들이다.


아내에게 물었다.


"어떻게 참았어? 화 나지 않았어?"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나도 화가 나지, 그냥 나는 내 방식대로 한 거야, 그 직원은 그 직원 방식대로 일을 했겠지. 물론 그 사이에 좀 더 부드러운 의사소통이 있었으면 좋았겠지."


아내는 T, 나는 F


분명 차이가 있다. 이럴 때 또 깨달음을 얻는다.


T는 F보다 훌륭하다. 적어도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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