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은숙
정해진 산책길에 노란 나비 한쌍이 불규칙한 철학자의 걸음을 따른다. 느긋한 독서가가 아니라 목적지가 분명했던 철학자의 길에선 꽃이니 나비니 이런 것들은 대수롭지 않은 이름이었다. 가림막을 한 경주마처럼 스치는 것들에 관심을 둘 이유도, 여유도 잊고 살던 그때는 꽃의 향기와 나비의 몸짓을 살필 일이 없었다. 차라리 말을 잊고서야 사물의 언어에 눈을 뜬 것이다. 철학자의 걸음은 어눌해졌고 느려진 속도만큼 관찰과 대화의 시간은 늘어갔다.
글쓰기로 지칠 때면 조용히 연구실에 앉아 장자를 꺼내 읽었다. 장자의 나비 이야기는 현실을 잊게 하는, 아니 그보다는 지금을 성찰하게 하는, 마법 같은 문자들이었다. 가족이라는 굴레를 피해 날아든 텍스트의 집에서 얼마간은 자유를 맛보았다. 시간이 흘러 그 텍스트에 갇혀 허우적대는 자신을 보게 되었을 때 철학자는 장주의 나비를 떠올렸다. 검은 문자의 열을 배경 삼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나비는 몇 년 후 차가운 수술대를 비추던 새하얀 조명 아래로 날아들었다. 그 날갯짓이 수술실을 따스한 노란색으로 바꾸었을까. 철학자는 의식하지 못했던 그 순간 나비의 빛깔을 입고 있었다.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가던 길에 다시 만난 나비는 낯선 글자의 모습으로 빛바랜 종이 위에 뉘었고, 갓 꿈에서 깨어난 나비의 이름은 '각시멧노랑나비'였다. 내 나라 말을 잃었던 시절 어느 생물학자는 무수한 나비들에 각각의 이름을 불러 주었고, 지금 철학자는 발음조차 힘겹고 긴 그 이름들에 그저 감사하다. 한 자 한 자 가만히 소리로 따라가다 보면 뭉뚱그려 '나비'라고만 알았던 개체들의 다른 형상과 빛깔과 무늬를 그리게 된다. 돌이켜보면 ‘각시’, 엄마, 딸 그리고 숱한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 중에 얼마간은 행복했고 얼마간은 불행했다. 그러나 살 속에 맘 속에 켜켜이 쌓인 기억으로 인해 되찾은 기호들도 조금씩 제 이야기를 풀어낸다. 다시 부르는 낱말은 나비의 이름처럼 낯설지만 풍요롭다.
햇살 좋은 오후, 바스락거리는 책장 소리에 깨어난 나비가 노란 날개를 펴고 접으며 철학자의 산책을 돕는다.